줄거리 요약
28년 전, 인류는 예측할 수 없었던 비극을 맞았다. ‘분노 바이러스’라 불린 감염은 순식간에 사람들을 피와 살을 갈구하는 존재로 바꿔놓았고, 문명은 붕괴했다. 도시와 마을은 폐허가 되었고,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은 고립된 채로 서로를 불신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로부터 정확히 28년이 지난 현재, 세계는 여전히 상처에서 회복되지 못한 채 정체된 시간 속에 머물러 있다.
이야기는 영국 북부의 작은 섬, 린디스판드에서 시작된다. 본토와 단절된 이 섬은 간만의 차에 따라 드러나는 좁은 둑길 하나로만 연결돼 있으며, 생존자들은 오랫동안 이곳에서 스스로를 지켜왔다. 섬의 주민들은 자신들만의 의식과 규율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통해 불안과 공포를 억누르며 삶을 이어간다. 이곳에서 12살 소년 스파이크는 부모와 함께 살아간다.
아버지 제이미는 강인한 생존자이지만 거칠고 폭력적인 면을 감추지 못하고, 어머니 아일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으로 점점 쇠약해지고 있다. 섬사람들은 아일라의 병세를 불길한 징조로 여기며 멀리하지만, 스파이크에게 그녀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존재다. 섬의 삶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로 유지되는 듯했지만, 곧 위기가 찾아온다.
스파이크가 성장의 의례로 참여하게 된 사냥 의식에서 그는 감염자의 흔적을 발견하고, 외부 세계의 위협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직감한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의 병세는 악화되고, 의사도 약도 없는 섬에서는 손쓸 방도가 없다. 절망에 빠진 스파이크는 결국 결심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본토로 나가 어머니를 구할 방법을 찾겠다는 것이다.
스파이크와 아일라는 험난한 바다를 건너 본토에 발을 딛는다. 그들이 마주한 풍경은 충격적이다. 한때 번성했던 도시와 마을은 이제 허물어진 콘크리트와 뒤엉킨 철골로 가득하고, 자연이 인간의 흔적을 덮으며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그 속에서 여전히 생존해 있는 감염자들은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진화해 있었다.
이들은 단순히 빠르게 달려드는 존재가 아니라, 더 강하고, 더 지능적이며, 무리 지어 사냥하는 ‘알파’ 군집으로 변해 있었다. 스파이크와 아일라는 이런 감염자 무리를 피해 도망치며, 그 과정에서 군인 출신의 생존자나 컬트 집단과 같은 다양한 인간 집단을 만나게 된다. 여정의 끝에서 두 모자는 결국 닥터 켈슨이라는 인물을 찾아낸다.
그는 감염 이후에도 의학 연구를 지속해 온 생존자이며, 한때 ‘뼈의 사원’이라 불리는 장소에서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었다. 하지만 켈슨은 스파이크가 바라던 희망을 주지 못한다. 아일라의 병은 감염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말기 암이었으며, 치료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오히려 아일라는 켈슨에게 스스로의 죽음을 도와 달라고 요청한다.
이 장면은 영화의 정서적 절정을 이룬다. 스파이크는 세상이 무너진 후에도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단 하나의 존재를 잃을 위기에 놓이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다’는 의미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아일라의 마지막 순간은 잔혹하지만 동시에 숭고하다. 그녀는 끝내 아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사랑의 기억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스파이크는 홀로 섬으로 돌아가지만, 그가 알고 있던 섬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감염자들의 진화와 외부 생존자 집단의 위협, 그리고 내부 갈등이 동시에 닥치며 새로운 위기가 예고된다. 엔딩은 명확한 결말을 내리지 않고 열린 여운을 남긴다.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한층 성숙해진 스파이크가 어떤 선택을 할지, 그리고 인류가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막을 내린다.
주요 인물 소개
스파이크 (Spike) – 알피 윌리엄스 (Alfie Williams)
이 영화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바로 12세 소년 스파이크다. 그는 린디스판드 섬이라는 고립된 공동체에서 태어나고 자라 외부 세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아버지 제이미의 보호 아래 살아왔으나, 아픈 어머니 아일라를 지켜보며 점점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성장의 통과의례인 사냥 의식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서사의 주체로 떠오른다. 스파이크는 처음에는 두렵고 미숙하지만,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위험한 본토 여정을 감행하며 비로소 진정한 성장을 이룬다.
아일라 (Isla) – 조디 코머 (Jodie Comer)
아일라는 스파이크의 어머니이자 영화의 감정적 핵심을 이루는 인물이다. 그녀는 정체 모를 병으로 고통받으며 점점 쇠약해져 가는데, 이후 밝혀지는 사실은 감염이 아닌 말기 암이라는 점이다. 영화 전반에서 아일라는 죽음과 마주하면서도 아들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고, 마지막 순간 존엄사를 선택하는 결단을 내린다.
제이미 (Jamie) – 애런 존슨 (Aaron Johnson)
제이미는 스파이크의 아버지이자 생존 공동체에서 중요한 전사다. 그는 아들을 보호하려는 본능과 거친 성격 사이에서 갈등하며, 가족과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때로는 잔혹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은 스파이크와의 관계에 긴장을 불러오며, 성장하는 아들이 아버지의 세계관에 도전하는 과정은 영화의 주요 드라마적 축이 된다.
Dr. 이안 켈슨 (Dr. Ian Kelson) – 랄프 파인즈 (Ralph Fiennes)
켈슨 박사는 본토에 홀로 남아 있는 생존자이자 의사다. 그는 감염 사태 이후에도 인간성과 지성을 잃지 않고, 폐허 속에서 ‘뼈의 사원’이라 불리는 공간을 지키며 죽은 자들을 기린다. 스파이크와 아일라에게 아일라의 상태를 알리고, 존엄사라는 무거운 결정을 돕는 인물로 등장한다. 켈슨은 영화의 공포 속에서 철학적 사유와 인간성 회복의 메시지를 상징한다.
삼손 (Samson, Alpha) – 치 루이스 페리 (Chi Lewis‑Parry)
삼손은 진화한 감염자의 리더로, 영화 속 공포의 집약체라 할 수 있다. 기존 ‘분노 바이러스’ 감염자들과 달리 지능과 조직성을 갖춘 알파 무리의 수장으로 등장하며, 생존자들에게 압도적인 위협을 가한다. 삼손은 인간의 원초적 공포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감염자 진화의 새로운 국면을 알리는 캐릭터다.
에릭 순드크비스트 (Erik Sundqvist) – 에드빈 뤼딩 (Edvin Ryding)
에릭은 스웨덴 출신의 NATO 병사로, 북해 순찰대를 대표해 본토에 남아 있는 생존 군세를 상징한다. 그는 스파이크 일행과 조우하며, 고립된 섬과 본토, 그리고 국제 사회의 단절된 관계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또한 현대 기술과 문명의 흔적을 통해 섬 소년에게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주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지미 크리스털 경 (Sir Jimmy Crystal) – 잭 오코넬 (Jack O’Connell)
지미 크리스털은 본토에서 형성된 컬트 집단의 리더다. 그는 감염 사태 초기 어린 나이에 생존했으며, 그 경험이 그를 광신적인 지도자로 만들었다. 화려한 의상과 상징적 제스처로 집단을 지배하며, 감염자와의 공생 혹은 숭배라는 독특한 사상을 가진다. 후속 편 《The Bone Temple》의 서사와도 연결되는 인물이다.
총평
《28년 후》는 대니 보일 감독과 알렉스 갈랜드 각본가가 2002년작 《28일 후》 이후 약 23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춘 ‘뉴레거시’ 후속작입니다. 폐허 같던 런던 배경에서 한 단계 나아가, 빅토리아시대적 고립 공동체와 현대 테크놀로지를 병치한 미학적 실험을 펼칩니다.
영화는 바이러스 발발 이후 영국이 유럽과 완전히 차단된 채 고립되고 소외된 사회로 변해버린 세계를 그립니다. 린디스판드 섬은 수세기 이전의 농경·사냥 공동체처럼 운영되며, 외부와 단절된 인류의 잔존 모습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배경은 브렉시트, 코로나 팬데믹, 기후 위기 등 현실 정치·사회적 맥락에 대한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시각적 스타일 측면에서 영화는 iPhone 촬영과 스타일라이즈된 영상미, 잔혹하면서도 시적 구성의 편집을 통해 서늘한 환상미를 구현합니다. 감독은 감염자 군단을 단순한 공포 요소가 아닌 의식과 기억으로 재해석된 집단으로 제시하며, 클로즈업과 컬러 대비를 통해 감각적인 인상을 남깁니다.
중심 캐릭터인 소년 스파이크(Alfie Williams)와 그의 어머니 아일라(Jodie Comer)의 관계는 영화의 감정적 중심을 이룹니다. 아일라의 말기 암 진단과 존엄사 선택 장면은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며, 특히 스파이크가 어머니의 유해를 '뼈의 사원'에 안치하고, 이후 생존 공동체에 신생아를 맡긴 후 외부 세계로 떠나는 결말은 성장, 상실, 희망을 동시에 담아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대체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Jodie Comer는 아일라 역할로 섬세한 모성애와 고통을 강렬하게 표현해 영화의 정서적 주요축이 되었고, Ralph Fiennes는 Dr. Kelson으로서 죽음과 기억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장면이 전환되는 순간에 영화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신인 Alfie Williams 역시 소년 주인공으로 감정의 폭을 넓히며 강렬한 첫 인상과 존재감을 남겼다는 평을 얻었습니다.
좀비(감염자) 묘사도 주목할 만합니다. 기존의 ‘분노 바이러스’ 감염자는 여러 세대를 거치며 ‘슬로우형’, ‘스프린터’, ‘알파’ 등 다양한 변이체로 발전했으며, 특히 알파 타입은 강력하고 지능적인 위협으로 등장합니다. 임산부 좀비의 출산 장면 등은 강한 시각적 충격과 코드 변화의 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영화는 장단점을 동시에 안고 있다는 평가도 존재합니다. 일부 평론가는 전체적으로 톤이 일관되지 못하고 플롯 전환이 급격하다는 지적, 감정적 장면과 공포 연출 사이의 균형이 때로는 깨진다는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Pitchfork에서는 “dramatically incoherent”라는 단평을 내리며, 과거 작품이 지녔던 통일성과 긴장감을 넘어서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흥행 면에서도 대체로 성공적입니다. 전 세계 흥행 수익은 약 1억 4천만 달러에 달하며, 관객 및 평론 평가 모두 Rotten Tomatoes 지수 기준 88%의 높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EW 등 주요 매체는 “강렬한 서사와 감정 깊이, 시각적 신선함을 동반한 2025년의 대표작”으로 호평했습니다.
결말은 전통적인 클리프행어를 넘어서는 서정적이고 열린 마무리입니다. 스파이크가 공동체를 떠나 외부로 나가는 장면은 **후속작 『The Bone Temple』(2026년 1월 개봉 예정)**으로 이어지는 내러티브 연결고리를 제공하며, 신화적이고 문화적 맥락(예: 지미 크리스털 컬트)의 압축을 통해 문명 왜곡과 기억 왜곡에 대한 메타 메시지를 던집니다.
총평하자면, 《28년 후》는 기존 좀비물의 공식을 뛰어넘어 가족 드라마, 종말 은유, 정치적 알레고리, 그리고 숨결 있는 시각미를 결합한 작품입니다. 분명한 단점도 있지만, 감정의 깊이와 철학적 울림, 그리고 세련된 연출의 미, 그리고 안정적인 연기진이 조화를 이루며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후속작에 대한 기대를 남기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감염과 사멸을 넘어선 ‘인간의 존엄’과 ‘기억의 의미’를 되묻게 만드는, 2025년의 좀비 장르 재정의작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