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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레틱 (Heretic 2025)] 줄거리, 인물 소개, 총평

by Roonion 2025.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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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레틱 관련 사진

 

 

줄거리

 

콜로라도의 외딴 마을. 회색 하늘 아래 두 명의 모르몬교 여성 선교사, 엘리자베스 반스(소피 대처)와 로라 팩스턴(클로이 이스트)은 낯선 동네의 문을 두드리며 하루 종일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다. 날씨는 점점 흐려지고, 갑작스러운 폭우가 내리기 시작하자 그들은 비를 피해 근처의 한 외딴 주택으로 향한다. 이윽고 만난 그 집의 주인, 리드 씨(휴 그랜트)는 예의 바른 미소로 그들을 집 안으로 초대하고 따뜻한 차를 건네며 파이가 곧 구워질 거라는 말을 덧붙인다. 처음에는 감사함과 안도감이 앞섰지만, 반스는 이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한다. 파이 냄새처럼 느껴졌던 향은 사실 향초였고, 집안은 지나치게 조용하고 어딘지 인위적인 기운이 감돌았다.

 

리드는 두 소녀를 앉혀놓고, 그들의 신념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다. 그는 친절한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점점 더 본질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으로 접근해 나간다.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그들의 내면을 해부하려는 듯한 의도를 품고 있었다. 리드는 두 개의 문 앞에 소녀들을 세우고, '믿음(Belief)'과 '불신(Disbelief)'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선택은 단순한 문 선택이 아니었다. 문 하나하나에는 리드가 고안한 기괴한 장치와 시험이 걸려 있었고, 이를 통해 그는 상대방의 신념과 심리를 조종하려 했다.

 

집안은 점차 탈출이 불가능한 구조로 변해간다. 문은 잠기고 창문은 열리지 않는다. 리드는 두 사람을 은근히 갈라놓으며, 상대에 대한 의심을 심고 서로에 대한 감정을 시험에 들게 한다. 종교적 확신은 점점 두려움과 불신으로 변모하고, 팩스턴은 현실을 부정하며 기도로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믿지만 반스는 이 상황이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임을 깨닫는다. 두 사람은 탈출을 시도하지만, 리드의 감시망은 집요하고 교묘하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이 집에서 과거에도 누군가가 실종되었으며, 리드가 특정 종교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반복적으로 유인해 왔다는 정황을 발견한다. 집의 벽에는 낙서처럼 적힌 철학적 문구들과, 신문에서 오려낸 여성 실종 기사들이 붙어 있다. 반스는 용기를 내어 리드를 공격하고, 그 틈에 팩스턴은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외부로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반스는 치명상을 입고 쓰러지고, 결국 팩스턴은 마지막 힘을 다해 리드의 눈을 피해 창고 문을 열고 눈보라 속으로 도망친다.

 

 

 

 

인물 소개

 

리드 씨 (휴 그랜트)
리드 씨는 겉보기에는 단정하고 온화한 노인이다. 고전 문학에 조예가 깊으며, 철학적 담론에도 능숙한 그는 첫인상만큼은 젠틀하고 신뢰감 있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매우 복잡하고 왜곡된 내면세계가 자리 잡고 있다. 그는 과거의 상처와 종교적 회의감,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냉소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신념 실험실'을 구축했다. 그의 집은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을 조종하고 시험하기 위한 무대로 기능한다. 리드는 집 전체를 마치 실험실처럼 구성해 놓고, 방문자에게 선택지를 제시하며 그들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한다. 특히 그는 종교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에게 집요하게 집착하며, 신앙이 위기 속에서 어떻게 변질되는지를 관찰하고 조롱한다.
휴 그랜트는 이 인물을 통해 기존의 밝고 유쾌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과묵한 말투, 고요한 눈빛 속에서 비치는 광기,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은 관객에게 진한 공포를 안겨준다. 그의 캐릭터는 단순한 악역이 아닌, 철학적이고 사유적인 '현대적 이단자'로서 기능하며, 영화의 중심축을 이룬다.

 

엘리자베스 반스 자매 (소피 대처)
엘리자베스는 두 선교사 중 지적이고 회의적인 성향을 지닌 인물이다. 그녀는 모르몬교를 전파하면서도 세속과 신념의 경계에서 자주 고민하는 흔적을 드러낸다. 팩스턴과는 대조적으로 상황을 보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리드 씨의 행동에서 처음부터 이질감을 느낀다. 집 안의 구조, 향초의 향, 리드가 하는 말의 모순점 등을 빠르게 포착하는 그녀는 탈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주도적인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지나치게 이성적인 성향은 그녀를 때로는 충돌로 이끌고, 팩스턴과의 갈등도 발생한다. 그녀는 이야기 후반부에서 리드의 실체를 밝혀내며 직접적인 저항을 시도하지만, 결국 심각한 부상을 입고 쓰러진다. 그럼에도 그녀의 희생은 팩스턴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소피 대처는 이 역할을 통해 내면의 갈등, 공포 속에서의 침착함, 그리고 무너지는 순간의 인간적인 절규까지 폭넓게 소화하며, 영화를 보다 사실적으로 만든다.

 

로라 팩스턴 자매 (클로이 이스트)
로라는 엘리자베스보다 더 순수하고 신념에 충실한 성격의 소유자다. 처음에는 리드 씨의 친절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황을 종교적 인내심으로 해석하려 한다. 그녀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고, 종종 반스의 회의적인 태도에 실망하거나 두려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점차 리드의 기이한 행동과 집 안의 비정상적인 구조에 압도당하면서 그녀도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반스가 리드에게 공격당하는 장면은 그녀의 인격 변화에 전환점을 제공한다. 이후 팩스턴은 공포를 딛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며, 리드를 직접적으로 상대하고 탈출을 감행하는 행동력 있는 인물로 성장한다. 그녀는 영화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신념과 생존 사이의 갈등'을 상징하는 인물로 남는다.
클로이 이스트는 섬세한 감정 연기와 폭발적인 에너지로 캐릭터의 감정선을 충실히 표현한다. 그녀의 내면 변화는 영화의 테마와 맞물려 큰 울림을 준다.

 

 

 

 

총평

 

《헤레틱》은 단순한 공포 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는 현대 사회가 직면한 신념의 위기, 종교적 맹신과 개인 정체성의 충돌, 그리고 인간 심리의 취약함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응축되어 있다. 영화는 외딴집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오로지 세 인물의 심리적 대결과 갈등을 통해 서사를 전개하며, 시청자의 공포는 괴물이나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심리 서스펜스 구조는 로버트 에거스, 아리 애스터 같은 현대 호러 감독들의 문법을 연상케 하며, A24 제작 특유의 무드와 깊이 있는 연출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영화가 인상적인 것은 악역 리드의 존재 방식이다. 그는 폭력적이기보다는 논리적이며, 무신론적 시선과 왜곡된 철학으로 두 젊은 여성의 세계를 천천히 해체해 나간다. 그의 말 한마디, 미소 하나가 인물들을 무너뜨리는 순간은 그 어떤 고어 장면보다도 더 강렬한 충격을 안긴다. 휴 그랜트는 기존의 로맨틱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와는 완전히 결별하며, 차가우면서도 은근한 광기를 지닌 리드를 완벽히 소화해 냈다. 이 변신은 단순한 이미지 탈피 그 이상으로,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주제의식을 끌어올리는 핵심 역할을 한다.

 

소피 대처와 클로이 이스트 역시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다.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능동적으로 저항하고 변화하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두 사람은 각자의 신념과 두려움, 상처를 깊이 있게 보여준다. 특히 반스와 팩스턴이 서로 충돌하면서도 결국 함께 생존을 모색하는 과정은 신념과 인간관계의 미묘한 층위를 드러내며, 여성 간의 연대와 갈등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영화는 특정 종교를 폄하하거나 비하하지 않으면서도, 맹목적 신념이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쉽게 균열될 수 있는지를 통찰력 있게 포착한다.

 

폐쇄된 공간을 활용한 촬영, 의도적으로 불편한 구도로 연출된 카메라 워크, 잔잔하면서도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사운드 디자인은 관객의 몰입을 극대화한다. 특히 조명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심야 장면들은 인물의 심리를 반영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하며, 관객을 캐릭터의 감정선에 깊이 끌어들인다. ‘문을 고르라’는 리드의 대사는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철학적 질문이 된다. 우리가 믿는 것들은 정말로 우리를 구원하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조작된 시험 앞에 무력해질 뿐인가?

 

다만 호불호는 갈릴 수 있다. 빠른 전개나 자극적인 연출을 선호하는 관객에게 이 영화는 느릿하고 대사 중심적이며, 해석을 요구하는 장면들이 많다. 명확한 결말을 내리지 않는 오픈 엔딩 또한 관객의 사고를 유도하려는 의도이지만,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은 단순 소비형 공포물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예술 영화임을 증명한다.

 

종합적으로 《헤레틱》은 장르적 틀을 뛰어넘는 수작이다. 인간의 신념이란 무엇인가, 믿음은 과연 극한의 공포 속에서도 유효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단순히 ‘무섭다’에서 끝나지 않고 관객의 마음 깊은 곳에 불편한 찜찜함을 남긴다. 그 여운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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