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요약
1950년대를 배경으로, 다국적 자본과 정치적 혼란, 가족 간 유산 전쟁이 얽힌 이야기로, 현실을 과장된 우화로 풀어낸다. 주인공 아나톨레 "자자" 코다(베니시오 델 토로)는 여섯 번이나 비행기 추락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재벌이자, 거대한 프로젝트 ‘페니키아 계획’을 추진 중인 인물이다. 그는 수십 년간 이룬 부와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인프라 제국을 완성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여덟 아들의 무능함과 탐욕에 실망한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 수녀가 되기로 한 외동딸 리즐(미아 트리플턴)을 후계자로 낙점한다. 리즐은 아버지의 불법적이고 도덕적 딜레마를 동반한 계획에 회의감을 느끼면서도, 가족의 붕괴를 막기 위해 협상과 설득에 동참하게 된다. 이들의 여정은 단순한 사업 투자 유치가 아니라, 정체된 권력과 윤리를 시험하는 과정이 된다.
이들이 추진하는 ‘페니키아 계획’은 제3세계 국가에 전력, 철도, 통신, 식수망을 공급하겠다는 거대 사업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이권과 자본의 이득이 얽힌 복잡한 투기사업이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아버지와 딸은 유럽,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를 돌며 다양한 투자자들과 만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리즈 아메드가 연기하는 혁명적 사상가 왕자, 톰 행크스와 브라이언 크랜스톤이 연기한 미국 재벌 형제, 그리고 베네딕트 컴버배치, 제프리 라이트, 스칼렛 요한슨 등 화려한 캐스트가 등장해 각국의 시각과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중반부에는 웨스 앤더슨 특유의 기묘한 설정이 등장하는데, 바로 움직이는 열차 위에서 벌어지는 농구 경기다. 이 경기는 단순한 쇼가 아니라, 투자자들이 실력을 검증받기 위해 참여한 비공식 경쟁이다.
코다는 이 경기에서 딸 리즐의 전략과 언변을 통해 마침내 반대하던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한 협상극에 머무르지 않는다. 미 정보기관은 코다의 계획이 국제 질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고, 그를 제거하기 위한 작전을 실행한다. 이 과정에서 실제 암살 시도, 내부자 배신, 기획 파산 음모 등이 일어나며 긴장감이 높아진다.
리즐은 자신이 믿었던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며, 아버지의 냉혹한 세계를 받아들일지, 아니면 탈출할지 고민한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제국이라는 허상을 유지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생존과 인간 존엄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클라이맥스에서 코다는 스스로 프로젝트의 운영권을 내려놓고, 마지막 남은 자금을 직원들의 임금으로 돌리며 “사람들에게 남기는 것은 건물이 아닌 시간과 존중”이라고 선언한다.
결말부에서 코다는 모든 권력과 부를 내려놓고, 리즐과 함께 작은 외딴섬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이들은 과거의 화려한 식탁 대신, 손으로 빚은 파스타와 가족 간 대화를 통해 진정한 풍요를 되찾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둘은 노을 아래서 카드를 치며, “권력이란 잃어야 비로소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라는 리즐의 대사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주요 인물 소개
아나톨레 “자자” 코다 (Anatole “Zsa‑zsa” Korda) – 베니시오 델 토로 (Benicio Del Toro)
유럽에서 손꼽히는 부호이자 인프라·무기·항공 분야의 로열티, 6차례 비행기 추락 생존자인 자자는 거대 투자 프로젝트 ‘Phoenician Scheme’을 후계자에게 물려주려 합니다. 아들 여럿을 거쳐 수녀가 되려던 딸 리즐을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자신의 사업과 도덕적 유산을 딸에게 물려주고자 합니다. 매너리즘과 카리스마가 공존하는 인물로, 델 토로는 “deadpan 연기”로 권력과 나르시시즘 사이를 오가며 캐릭터의 깊이를 쌓아냅니다.
리즐 (Sister Liesl) – 미아 트리플턴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삶을 선택한 수녀 지망생으로, 돌아가라는 부정적 감정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후계자로 지명된 후, 아버지와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기업인의 냉정한 면모와 맞서게 됩니다. 표정과 언어 사용에서 건조한 위트를 보여주며 내면의 변화와 성찰을 담아냅니다. 트리플턴은 이번 영화로 첫 주연 도전을 했으며, 칸영화제 등지에서 "강렬한 존재감"이란 평가를 받았습니다.
비욘 룬드 (Bjorn Lund) – 마이클 세라 (Michael Cera)
노르웨이 출신의 곤충학자이자 리즐의 개인 튜터로, 코다 가문의 일원은 아니지만 감독의 기묘한 동반자입니다. 무뚝뚝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으로, 기차 농구 경기·각종 대화 장면에서 독특한 조연 역할을 수행합니다. 세라는 덩치에 맞지 않는 캐릭터를 싱크로율 있게 표현하며 이목을 끕니다.
프린스 파루크 (Prince Farouk) – 리즈 아메드
Phoenician Scheme의 핵심 협상 파트너로 중동 국가의 실질적인 정치·경제 엘리트입니다. 코다 일행과 터널·철도 등 인프라 협상을 진행하며, 영화 속 국제정치·자본 논리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리랜드 & 레이건 (Leland & Reagan) – 톰 행크스 (Tom Hanks) , 브라이언 크랜스턴 (Bryan Cranston)
미국 재벌 형제로, 철도 및 투자 컨소시엄을 통해 Phoenician Scheme의 주요 파트너 역할을 수행합니다. 각자의 성격 차이(온화 vs 전략적 조율)를 보여주며, 외교·자본 관계의 복합성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합니다.
마르세유 밥 (Marseille Bob) – 마티유 아말릭 (Mathieu Amalric)
프랑스 밤문화·범죄 조직을 대표하는 사업가로, Phoenicia 내 범죄망을 통해 자금 조달 역할을 합니다. 그의 존재는 시스템의 그림자와 권력 유착을 상징하며, 유머와 긴장의 중간 지점에 위치합니다.
세르지오 (Sergio) – 리처드 아이오아디
급진 자유주의 무장단체 ‘Intercontinental Radical Freedom Militia Corps’의 리더로, Phoenician Scheme에 반대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등장으로 프로젝트가 단순한 자본 교류를 넘어 정치·이념적 충돌의 장이 되며, 영화의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마티 (Marty) – 제프리 라이트 (Jeffrey Wright)
뉴아크 투자 컨소시엄의 대표 인물로 Phoenicia 지역의 운하·수로 개발을 맡습니다. 미국 사업가 중 또 다른 축으로, 다국적 자본의 음영을 보여줍니다.
힐다 (Cousin Hilda Sussman‑Korda) – 스칼렛 요한슨 (Scarlett Johansson)
코다 가문의 친척으로, 수력 발전 댐 건설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현실적이고 사업적인 인물입니다. 친밀함 속 권력 논리를 나타내며, 가족 내 비즈니스 윤리와 이익 갈등을 대변합니다.
언클 누바르 (Uncle Nubar) – 베네딕트 컴버배치 (Benedict Cumberbatch)
코다의 형제이자 사업 경쟁자, 리즐의 친부 관련 미스터리가 얽힌 인물입니다. 가족 내 복잡한 권력 역학과 과거 사건의 미스터리를 드러냅니다.
총평
웨스 앤더슨 감독의 최신작 《페니키안 스킴》은 그의 독창적인 연출 세계관이 가장 극단적으로 확장된 작품이다. 이번 영화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억만장자 자자 코다(베네시오 델 토로)가 추진하는 거대한 인프라 프로젝트 ‘페니키안 스킴(Phoenician Scheme)’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야기의 중심은 단순한 자본 유치가 아닌, 가족 간 유산 분쟁, 글로벌 자본주의의 정치적 민낯, 인간의 도덕적 양심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자자는 수녀가 되려던 외동딸 리즐(미아 트리플턴)을 사업의 후계자로 선택하며, 오랜 시간 멀어졌던 부녀 관계의 갈등과 화해가 주요 줄거리로 전개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단연 시각적 구성이다. 앤더슨 특유의 정중앙 구도, 브루탈리즘 양식의 세트 디자인, 컬러 팔레트의 조화는 이번 작품에서도 빛난다. 특히 ‘기차 위에서 벌어지는 농구 경기’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앤더슨답고, 가장 낯설며, 동시에 가장 유쾌한 시퀀스로 꼽힌다.
이러한 시각적 장치는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진 듯한 영화의 세계관을 정립하며, 등장인물의 감정이나 사회적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악적으로는 50~60년대 유럽풍 클래식과 재즈가 혼합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더욱 강화하며, 관객을 하나의 ‘감각적 공간’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이런 강한 스타일은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한다. 많은 평론가들은 영화가 지나치게 양식적 요소에 매몰되어 정작 서사나 인물의 감정이 얕게 다뤄졌다고 지적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시각적 디테일은 눈을 사로잡지만, 인물의 내면은 늘 거리감 있게 느껴진다”라고 평했고, AP 통신은 “앤더슨 영화 중 가장 극단적이면서도 가장 공허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실제로 자자 코다와 리즐의 감정선은 대사로만 암시될 뿐 깊은 정서적 충돌이나 진심 어린 화해의 장면은 부족하게 그려져 있어, 감정적 몰입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아쉬움을 남긴다.
주제적으로 영화는 ‘거대한 시스템 속 인간성 회복’이라는 의제를 던진다. 페니키아 계획은 단순한 인프라 사업이 아니라, 자본과 윤리, 종교와 과학, 가부장적 유산과 새로운 세대의 가치가 충돌하는 무대다. 리즐은 이 모든 균열의 중심에서 신념을 시험당하는 존재로, 그녀의 내적 성장과 선택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이끈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의식은 지나치게 많은 조연 인물과 세계관 설정에 분산되어, 핵심이 흐려지는 문제점도 지적된다.
연기 면에서는 베니시오 델 토로의 묵직하면서도 장난기 어린 연기가 주목받았으며, 미아 트리플턴은 이제 막 시작한 신인 연기자로서 신선한 매력을 발산했다. 특히 마이클 세라, 브라이언 크랜스턴, 톰 행크스 등 조연 배우들이 풍성하게 캐스팅되어 있으며, 그들 각각의 에피소드가 다채로운 색감을 더했다. 이들은 단순한 감초 역할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자본과 정치의 캐리커처적 묘사를 통해 풍자적인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결말은 웨스 앤더슨 특유의 방식대로 '극적인 변화 없이', 그러나 아이러니한 평온함 속에 마무리된다. 자자는 모든 재산을 잃고 딸과 함께 조용한 삶을 택하며, 진정한 자유와 화해의 순간을 맞는다. 이 장면은 무수한 풍자와 과장을 지나온 여정 끝에 도달한 인간적 회복의 선언처럼 다가온다. 일부 관객은 이 결말을 평면적이라 평했지만, 웨스 앤더슨의 팬이라면 그 감정의 층위와 뉘앙스를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페니키안 스킴》는 전형적인 앤더슨 영화이자, 그의 영화 세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적 텍스트다. 대중성과 예술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때로는 현란하고 때로는 공허하지만, 분명 독창적인 시도임은 부정할 수 없다. 스타일과 주제의 완전한 합일은 아니지만, 여전히 시도 자체로도 의미 있는 작품이며, “웨스 앤더슨다운 영화”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만족스러운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