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요약
이야기는 16년 전의 한 폭발적인 밤으로 시작한다. 미국 남부 국경 지대, 혁명 단체 ‘프렌치 75(French 75)’가 불법 수용소를 습격해 억류된 이민자들을 해방시키는 장면이다.
폭파 전문가였던 밥 퍼거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그 작전의 핵심 인물로, 그의 카리스마와 열정은 동료들을 하나로 모은다. 그러나 작전 중 미군 대령 스티븐 ‘록쏘우’(숀 펜)의 반격으로 모든 것이 뒤집히고, 수많은 사상자와 배신이 발생한다. 혁명의 이름으로 싸운 그 밤 이후, 밥은 동지와 이상을 모두 잃고 사라진다.
16년 후, 그는 이름을 바꾸어 캘리포니아 외곽의 황량한 사막 마을에서 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와 함께 조용히 살아간다. 낡은 트레일러에서 라디오와 커피만이 그의 하루를 채운다.
과거를 잊으려 하지만, 과거는 여전히 그의 내면을 짓누른다. 딸 윌라는 사춘기의 반항과 호기심 속에서 아버지의 비밀스러운 과거를 감지하며, 그 둘 사이엔 말하지 못한 거리감이 흐른다. 그러던 어느 날, 뉴스 속에서 록쏘우의 얼굴이 다시 등장한다. 그는 이제 군 출신 극우 민병대의 지도자로 복귀해 사회 혼란 속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밥의 은신처는 곧 발각되고, 윌라는 의문의 무리에게 납치된다. 밥은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닫고, 한때의 동지들을 다시 찾기 시작한다. 그중에는 전직 혁명가이자 지금은 불법 격투장을 운영하는 ‘센세이 세르히오’(베니시오 델 토로)도 있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 편집하며, 밥이 한때 이상을 위해 싸웠던 순간들과 지금의 몰락한 모습 사이의 간극을 시각적으로 대비시킨다. 혁명은 그의 삶을 바꿨지만, 구원하지는 못했다.
영화 중반부는 밥이 딸을 찾기 위해 다시 무장하고, 미국 남서부 전역을 가로지르는 여정을 따라간다. 황량한 사막, 버려진 창고, 그리고 도심의 지하 벙커 등에서 이어지는 추격전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밥이 자신의 과거를 직면하는 의식처럼 그려진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혁명가’가 아니라 ‘아버지’로서 싸운다. 록쏘우는 밥의 과거를 조롱하며 “너희가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우리 손안에 있다”고 말한다. 이 대사는 영화의 정치적 핵심이자, 끝없이 되풀이되는 폭력의 순환을 상징한다.
후반부, 밥은 록쏘우의 요새로 침투한다. 폭발과 총격, 혼란 속에서도 카메라는 밥의 표정에 집중하며, 그가 더 이상 ‘승리’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는 오직 딸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모든 폭력을 끝내기 위해 움직인다.
윌라를 구출한 뒤, 부녀는 불타는 기지에서 탈출한다. 록쏘우는 폐허 속에 남아 “이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고 외치지만, 밥은 조용히 고개를 돌린다. “그래, 하지만 이번엔 내 딸이 싸울 차례야.”
영화는 폭력의 잔재 위에 남은 부녀의 실루엣으로 마무리된다. 황혼 속에서 그들은 멀어지며, 화면에는 느릿한 자막이 흐른다. “One battle after another — until peace finds us.” 그 말은 단순히 그들의 싸움이 아니라, 시대와 인간이 반복해 온 끝없는 전투를 상징한다.
주요 인물 소개
밥 퍼거슨(Bob Ferguson)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Leonardo DiCaprio)
과거 이름은 ‘패트 “Ghetto Pat” 칼훈(Pat “Ghetto Pat” Calhoun)’ 등으로 불렸으며, 혁명 시절에는 격렬한 활동가였던 것으로 암시됩니다. 16년이 흐른 뒤, 그는 이름을 바꾸고 외딴 장소에서 딸 ‘윌라(Willa)’와 함께 최소한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그의 삶은 과거에 비해 평범하지만, 동시에 강박적이고 회피적인 면모가 존재합니다. 극의 진행 과정에서 밥은 자신의 딸이 납치되는 위기를 겪으며 과거의 동지들과 재회하고, 과거의 적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그의 여정은 복수나 단순 액션이 아니라 “과거의 폭력/이상과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라는 정서적 여정이기도 합니다.
스티븐 J. 록쏘우(Col. Steven J. Lockjaw) - 숀 펜 (Sean Penn)
혁명 조직과 맞섰던 과거 군사 작전에서 상징적인 인물로 등장하며, 현재는 극우 민병대 또는 권력 기구와 연결되어 있는 듯한 설정이 드러납니다. 록쏘우는 냉혹하고 계산적인 면모가 강하며, 밥과 그의 동료들에게 있어서 과거 죄책감, 배신감, 복수심 등의 감정을 환기시키는 존재입니다.
윌라 퍼거슨(Willa Ferguson-Beverly Hills) - 체이스 인피니티 (Chase Infiniti)
윌라는 아버지 밥이 혁명가였던 과거를 잘 알지 못하고 자라난 세대로, 성장기와 자립심을 갖춘 인물입니다. 아버지의 은둔 생활 속에서 비교적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과거의 폭력과 권력이 자신과 연결될 때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윌라가 납치되는 사건은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몰아가며, 밥이 다시 전장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직접적인 계기이자, 밥과 윌라 관계의 재정립을 위한 핵심 장치입니다.
센세이 세르히오(Sensei Sergio) - 베니시오 델 토로 (Benicio Del Toro)
‘센세이’라는 호칭에서 알 수 있듯, 세르히오는 일종의 스승적 존재이자 조직 내부의 실질적인 군사·작전 경험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는 밥이 과거 선택했던 길과 현재 마주해야 할 운명을 대리하는 존재로 기능하며, 밥이 다시 싸움에 뛰어들도록 돕는 촉매 역할을 합니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세르히오와 밥의 관계가 ‘스승과 제자’에서 ‘사람과 사람’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감정적 깊이가 더해집니다.
퍼피디아 비벌리힐스(Perfidia Beverly Hills) - 테야나 테일러 (Teyana Taylor)
퍼피디아는 밥의 과거에 깊이 관여되어 있으며, 그녀의 선택과 희생이 밥과 윌라의 현재 갈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녀는 이상주의자이면서도 현실의 폭력과 타협했던 인물로, 영화 속에서 밥이 마주해야 할 과거의 ‘이상과 실패’의 화신으로 기능합니다. 극 중에서는 아버지와 딸, 동료들과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밥과 윌라 모두에게 ‘과거를 직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디앤드라(Deandra) - 레지나 홀 (Regina Hall)
디앤드라는 밥과 세르히오 등과 같은 과거를 공유했지만, 현재는 보다 ‘일상’으로 돌아가 있으려 애쓰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녀의 존재는 밥이 더 이상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며, 동시에 조직 내부의 감정적 잔여물들을 보여 줍니다.
총평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대담하고 복합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개인의 복수, 사회의 분열, 그리고 인간의 구원을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엮어내며, 자신의 미학적 세계를 상업적 스펙터클 속에서도 굳건히 유지한다.
평단은 이를 “폭력과 화해의 신화적 여정”이라 불렀으며, 디카프리오의 강렬한 연기와 앤더슨 특유의 시각적 연출이 완벽히 조화를 이뤘다고 평했다.
영화는 겉으로는 액션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깊은 정치적 은유와 철학적 질문이 깃들어 있다. 미국 남부 국경 지역을 배경으로, 전직 혁명가 밥 퍼거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사라진 딸을 구하기 위해 다시 무장하는 이야기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자신의 과거와 이상, 그리고 폭력의 유산을 직면하는 이야기다. 감독은 밥의 여정을 통해 “정의라는 이름의 폭력”이 얼마나 쉽게 다시 폭력을 낳는지 보여주며,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묻는다.
연출 면에서 폴 토마스 앤더슨은 자신만의 리듬과 시각적 문법을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영화의 초반부, 폭발적인 액션과 사막의 고요한 풍광을 대비시키는 시퀀스들은 전쟁보다 더 깊은 내면의 전투를 상징한다.
광활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 롱테이크, 느릿한 팬 이동, 그리고 실제 필름 카메라 특유의 질감은 디지털 시대의 냉정함 속에서 인간적인 온기를 불어넣는다. 평론가들은 이를 “PTA가 만든 가장 시적인 액션 영화”라고 불렀다. 실제로 중반부 사막 추격신은 장르적 긴장감과 예술적 구도를 동시에 구현하며, 그 자체로 한 편의 회화처럼 느껴진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영화의 깊이를 더한다. 디카프리오는 밥을 단순한 영웅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신념이 낳은 파괴를 끌어안은 채, 구원과 속죄를 동시에 찾아 나서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숀 펜이 연기한 록쏘우는 그와 정반대의 존재로, 권력과 통제를 숭배하는 인물이다.
둘의 대립은 단순한 적대가 아니라, 한 인간의 양면성의 충돌로 표현된다. 베니시오 델 토로의 존재 역시 강렬하다. 한때 혁명 동지였던 그가 밥을 다시 싸움으로 이끄는 장면은, 과거의 그림자가 어떻게 현재를 잠식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평적 평가는 전반적으로 매우 호의적이다. 메타크리틱에서는 90점대의 높은 점수를 기록했고, 로튼토마토에서도 “감독의 경력 중 가장 복합적이면서도 감정적으로 깊은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일부 평론가들은 영화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장황하다고 지적했지만, 그조차도 앤더슨의 세계가 가진 고유한 미학의 일부로 평가됐다. 오히려 이 복잡성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혼란과 모순을 반영한다는 해석도 많았다.
그러나 상업적 측면에서는 약간의 불안이 존재한다. 대규모 제작비와 긴 러닝타임,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장르적 성격 탓에 관객층이 한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런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2025년을 대표하는 “감독 중심 영화(auteur film)”로 자리 잡았다. 상업과 예술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결국 ‘끝없는 싸움 속에서 인간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묻는다. 영화의 마지막, 불타는 요새를 뒤로하고 걸어 나오는 부녀의 실루엣은 단순한 승리의 장면이 아니다.
그것은 폭력의 순환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의지이자, 세상이 변하지 않아도 스스로 변하려는 용기에 대한 찬가다. 앤더슨은 이 영화에서 거대한 혼돈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과 구원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