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요약
영화는 25년 동안 제지 회사에서 일하며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중년 가장 유만수의 일상에서 시작된다. 그는 회사에 충성했고, 성실함 외에는 특별한 무기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안정된 직장과 그 직장으로 지켜 온 가족이 있었다.
아내와 두 자녀, 그리고 오래된 친구 같은 반려견까지. 그의 삶은 “열심히 살면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 위에 단단히 서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그 믿음은 어느 날, 단 한 장의 해고 통지서를 통해 균열을 넘어 완전히 붕괴된다.
회사는 구조조정이라는 한 줄의 명목 아래 만수를 해고하고, 그에게 남긴 말은 “죄송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였다. 그 말은 마치 사회가 한 인간을 도려내면서 쓰는, 책임을 지지 않는 가장 비겁한 문장처럼 들린다.
처음에 만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일자리를 구하면 될 뿐”이라 믿는다. 가정의 가장으로서 체면도, 책임감도 내려놓을 수 없었기에 그는 면접을 보러 다니고, 단기 일자리에도 뛰어든다. 하지만 나이는 불리한 조건이 되고 25년의 경력은 오히려 “한 회사밖에 몰랐던 사람”으로 치부되어 외면당한다.
그는 자신이 무능해진 것이 아니라 시대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가족은 처음에는 만수를 지지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활비가 빠져나가고, 아이들 학원비가 밀리고, 아내가 재취업을 시도하면서 관계는 조금씩 팽팽하게 틀어진다. 만수는 직업을 잃은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린 상태에 가까워진다.
그 무력감 속에서 시간이 갈수록 한 가지 생각이 더욱 굳어진다. “누군가 내가 들어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 사람만 없어지면 되는 것 아닌가.” 만수는 온라인 구인 커뮤니티와 인력 중개 사이트를 뒤지며 자신과 경쟁하게 될 사람들의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 마치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정당한 행위라도 되는 듯 스스로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그가 처음 범죄를 실행하던 날, 그의 손은 떨렸고 눈빛에는 공포가 서려 있었지만, 동시에 “이 선택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또한 자리하고 있었다. 영화의 제목처럼, 그는 모든 행동을 “어쩔 수 없었다”는 한 문장으로 자기 안에서 합리화한다.
살인이 반복될수록 만수의 죄책감과 망설임은 점차 마모되어 간다. 한때 그가 식탁에서, 소파에서, 출근길 버스 안에서 농담을 하며 웃던 평범한 가장의 표정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는 회사 사무실처럼 차갑고 계산적인 표정으로 변한다.
살인을 성공적으로 덮을수록 그는 마치 삶을 다시 되찾아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점점 더 완벽하게 흔적을 숨기며 자신을 사회의 승자로 되돌릴 방법을 숙련해 간다.
결국 그의 계획은 현실이 된다. 경쟁자들이 사라진 자리에 그는 다시 제지 관련 분야의 새 일자리로 복귀한다. 회사는 그를 유능한 경력자로 대우하며 환영한다. 그러나 그 순간, 영화는 관객에게 승리의 해피엔드를 제공하는 대신 철저한 공허를 보여준다.
회사 책상 앞에 앉은 만수의 얼굴에는 기쁨도 감격도 없다. 그가 되찾았다고 생각했던 삶은, 사실 더 이상 그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가족과의 관계도 무너졌고, 인간적인 감정도 거의 제거한 상태로 남았다. 그가 성공적으로 되돌아온 것은 일자리였지만, 잃어버린 것은 인간성이었다.
엔딩 장면에서 만수는 자동화된 제지 공장을 홀로 걷는다. 기계의 굉음이 가득한 공간에서 인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누구도 그를 바라보지 않고, 그도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가 노력해 되찾은 자리는 따뜻한 삶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산업 구조 속의 마지막 빈 의자였다.
영화는 묻는다. “정말 어쩔 수 없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견디기 위해 그렇게 말할 뿐일까?” 만수의 비극은 단지 개인의 타락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개인에게 선택의 여지를 지워버린 뒤 남기는 처참한 흔적을 상징한다.
주요 인물 소개
유만수 - 이병헌
유만수는 제지 산업 분야에서 25년 넘게 몸담아 온 베테랑이다. 그의 삶은 안정적이고 평범했으며, 아내와 두 자녀, 반려견과 함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겉보기엔 나무랄 데 없는 중산층의 가장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고, 그는 일상의 기반을 잃는다. 실직과 실패가 반복되자 만수의 자존감과 정체성은 흔들린다. 이 시점부터 그는 점점 절박해지고, 고립감에 사로잡히며 심리적으로 깊은 침체 속으로 빠져든다. 유만수는 단순한 ‘살인자’나 ‘악인’이 아니라, 구조적 불안과 경쟁 사회에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극한의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미리 - 손예진
이미리는 만수의 아내이자, 두 자녀의 어머니다. 만수와 함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고자 했던 존재. 영화 초반, 그들은 함께 집을 마련하고 평범하지만 안정된 일상을 살아간다. 만수가 해고된 후, 이미리는 직업을 구하거나 생계를 유지하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녀 또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가족의 위기는 이미 그들이 생각했던 안전망을 무너뜨린다.
구범모 - 이성민
구범모는 만수의 첫 번째 ‘표적’이자 경쟁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만수처럼 제지업계 출신이며, 만수가 생각하는 “공정한 경쟁자”였다. 그의 존재는 만수가 경쟁자를 제거하는 정당성 혹은 이유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구범모가 일자리를 노리는 경쟁자 중 하나라는 사실 자체가, 만수로 하여금 살인을 자신을 위한 정당한 생존 방법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명목이 된다.
고시조 - 차승원
고시조는 만수의 두 번째 표적이다. 그는 제지업계가 아닌, 다른 업종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만수는 그의 존재마저도 ‘위협’으로 인식하고 제거 대상으로 삼는다. 이 인물은 영화에서 “누구든지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같은 업계가 아니라,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다양한 계층과 직업군이 모두 경쟁 사회의 일부이며, 그 속에서 누군가는 비정하게 희생될 수 있다는 냉소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최선출 - 박희순
최선출은 만수가 이력서를 제출했던 제지 회사의 ‘라인 매니저’로, 영화 속에서 만수에게 모욕을 주는 인물이다. 만수에게 있어 이 인물은 단순한 회사의 얼굴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무시당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이다. 그의 존재는 만수의 분노와 좌절을 자극하고, 결국 만수의 극단적인 선택을 부채질하는 요소로 기능한다. 영화는 단순히 개인의 탐욕이나 광기를 탓하지 않는다. 사회 구조 속에서 불안정한 노동자 지위, 무기력과 절망, 경쟁 이런 것들이 사람을 얼마든지 극단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이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이아라 - 염혜란
이아라는 구범모의 아내로, 한때 배우 지망이었으나 좌절을 겪은 경험이 있다. 그녀의 삶은 불안정했고, 배우로서도, 가장의 아내로서도 안정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 이러한 설정은 영화가 단순히 주인공 만수에 국한된 절망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퍼진 서바이벌을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총평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중년 가장의 몰락과 파국을 통해 노동의 가치가 무너진 시대의 잔혹한 현실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한 인간이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릴 때,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가?” 그러나 영화는 그 질문을 단순한 범죄 스릴러의 형식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과정 전체를 차갑고 정교한 풍자로 묘사해, 관객이 불쾌함과 공포, 동시에 깊은 공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 불편한 감정의 혼합이야말로 영화가 의도적으로 노린 지점이며, 쉽게 소비되는 장르 영화와 분명히 선을 긋는 이유이다.
영화의 초반부는 평범함 그 자체다. 25년 동안 한 회사에 충성한 가장 유만수에게는 평범하지만 안정적인 일상, 가족, 집이 있었다. 그는 성실하기만 하면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믿어왔고, 그 믿음은 오랜 세월 동안 그에게 버팀목이 되어왔다.
그러나 단 한 장의 해고 통지서, 그리고 “어쩔 수 없다”라는 변명 같은 한 문장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감독은 이 순간을 과장 없이 건조하게 연출함으로써, 사건의 충격을 폭발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현실처럼 느리게, 그러나 돌이킬 수 없게 번져가는 감정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이 지점부터 영화는 서서히 장르적 변주를 시작한다. 가장으로서의 체면과 책임감에 사로잡힌 유만수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분투하지만, 나이라는 벽, 산업 구조 변화, 자동화된 노동 시장, 그리고 “경력은 돼지만 유연하지 않다”는 낙인은 그가 다시 일자리를 찾는 시도를 하나씩 무너뜨린다.
관객은 그가 처한 상황에 공감하면서도, 점차 무너져가는 그의 내면을 보며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 불안감은 바로 감독이 교묘하게 쌓아 올린 장치이며,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토대다. 나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착하고 성실한 사람도 이렇게 무너질 수 있다”는 현실이 주는 공포다.
그러나 영화의 진짜 정점은 그가 완전히 타락하는 순간이 아니라, 그 타락을 스스로 합리화하기 시작하는 과정에 있다. 유만수는 자신보다 젊고, 유능하고, 체력도 있고, 시장성이 있는 사람들을 경쟁자로 여기기 시작하고, 결국 그들을 제거하는 것이 자신의 생존을 위한 정당한 선택이라고 믿는다.
관객은 그가 자멸해 가는 모습을 보며 공포를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그 배경에 있는 사회 구조를 떠올리며 복잡한 감정에 빠진다. 영화는 악인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절망을 방치한 사회가 어떻게 한 사람을 악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후반부에 이르면 유만수는 다시 일자리를 얻고, 사회적 성공을 되찾은 듯 보인다. 그러나 그 표정에는 승리도, 만족도 없다. 모든 것을 되찾았지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아이러니. 이것은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압축한 장면이다.
인간성을 희생해 얻은 삶은 결코 삶이 아니라 껍데기일 뿐이며, 그 껍데기를 위해 무엇을 버렸는지조차 잊어버릴 만큼 타락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이라는 것이다.
《어쩔 수가 없다》는 불친절하고, 불편하며, 결코 가볍지 않은 영화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올해 가장 뛰어난 사회적 메시지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을 만하다. 감독은 “한 사람의 파멸”을 통해 “한 사회의 균열”을 보여주고, 관객에게 묻는다.
정말 어쩔 수 없었는가? 혹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 책임을 내려놓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인가?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들이밀고, 그 질문이 오래도록 가슴 한구석에서 계속 쓰라리도록 만든다. 이 영화의 위대함은 바로 그 잔여감에 있다. 보고 나서야 진짜 불편함이 시작되는 영화. 그리고 바로 그 불편함이 이 작품의 존재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