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요약
겨울의 속초는 관광객이 끊기고 바람이 거칠게 부는 적막한 바닷가 도시다. 영화는 이 겨울의 공기를 그대로 품은 채, 조용하지만 깊은 정서의 파동을 따라간다. 주인공 수하는 속초의 한 펜션에서 일하며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어머니와 함께 산다.
바다 냄새가 항상 따라붙는 삶, 전국의 사람들이 여름이면 몰려왔다가 겨울이면 사라지는 도시. 수하는 이 삶이 익숙하지만, 익숙함이 곧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매일 반복되는 일상 안에서 묵직한 공허를 품고 살아간다.
수하는 한국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하지만 아버지를 본 적도,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떠났고, 어머니는 아버지 이야기를 더 언급하려 하지 않는다.
그 공백은 수하의 삶 전체에 미묘한 영향을 남겼다. 외모와 언어, 자기 정체성에 대한 흔들림, 그리고 자신이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감각. 속초라는 도시가 주는 고립감은 수하에게 더 깊게 스며든다.
수하에게는 준호라는 남자친구가 있다. 준호는 수하를 사랑하지만, 마음속에는 속초라는 도시를 벗어나 더 큰 곳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는 수하에게 서울로 함께 가자고 말하지만, 수하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준호는 속초를 떠나고 싶은 이유가 분명하지만, 수하는 속초를 떠나고 싶은 것인지, 남고 싶은 것인지조차 모른다. 그녀가 머무르고 있는 공간은 애착과 고립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다.
이때 펜션에 한 손님이 찾아온다. 프랑스에서 온 만화가 케랑. 그는 관광이 목적이 아니라, 작업을 위해 고요한 장소가 필요해 속초에 왔다. 수하는 프랑스어를 할 수 있었기에 그와 소통을 담당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손님과 직원의 관계였지만, 케랑과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수하의 내면에 억눌려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프랑스와 한국이라는 두 문화의 경계에 있는 수하에게, 프랑스인인 케랑의 존재는 묘한 끌림과 당혹을 동시에 불러온다.
케랑은 관찰하는 사람이다. 사람의 표정과 몸짓,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고 스케치한다. 그는 작품을 위해 세상을 기록하는 사람이며, 그 기록 속에서 감정을 보호하기라도 하듯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간다. 수하는 그런 케랑에게 조심스럽게 끌린다. 그것은 사랑이라 단정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수하는 케랑에게서 자신이 평생 찾고자 했던 어떤 실마리를 발견하려 한다. 자신의 뿌리, 정체성, 태어남과 결여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케랑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고, 수하의 마음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외지인이고, 관찰자이며, 감정을 작품으로 전환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설명할 수 없는 유대가 생겨난다. 수하는 자신의 요리를 내어주고, 케랑은 그림으로 세상을 표현한다. 언어 이상의 방식으로 서로 교차하는 순간들이 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해변을 걷거나 함께 저녁을 나누는 장면들은 미묘하게 서로를 끌어당기지만, 동시에 한 걸음도 더 가까워지지 못한다. 그 간극 속에서 수하는 혼란을 느낀다. 케랑과의 거리감은 곧 수하가 세상과 맺고 있는 거리감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준호와의 관계는 결국 틀어지기 시작한다. 준호는 수하가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하지만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는 수하가 자신을 그저 붙잡아주기를 바라지만, 수하는 그러지 않는다.
준호가 진정 원하는 것은 수하라기보다, 속초라는 도시를 떠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열망을 함께 해줄 사람이기 때문이다. 준호는 떠나고, 남겨진 수하는 결정을 강요받지 않지만 오히려 더 명확한 외로움과 마주한다.
케랑이 속초를 떠날 시간이 다가오면서, 수하는 자신이 그에게 기대려 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케랑 역시 수하에게 감정적 확신을 주지 못한다. 둘 사이의 관계는 끝내 이름 붙여지지 못한 채 균열과 여운을 동시에 남긴다. 케랑이 떠난 뒤 펜션의 방에 남아 있는 흔적들, 해변에 남아 있는 발자국, 스케치북의 미완성 그림들은 수하의 마음속에 응답 없는 질문을 되돌려준다.
영화는 조용하게 끝난다. 화려한 변화나 완전한 깨달음은 없다. 다만 겨울의 속초 속에서 잠시 마주친 두 사람의 만남이 한 사람의 삶을 미묘하게, 그러나 깊숙이 흔들어 놓았다는 사실만이 남는다. 관객은 수하가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할지 화면이 끊긴 뒤에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여백… 그것이 영화가 남기고자 한 가장 큰 여운이다.
주요 인물 소개
수하 - 벨라 킴 (Bella Kim)
수하는 이 영화의 중심 시점이며, 약 25세의 젊은 여성이다. 속초의 작은 해안 마을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며 펜션 일을 돕는다. 그녀의 삶은 반복되는 일상, 엄마와의 생선 장사, 남자친구와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수하는 단순히 손님을 맞고 집안 일을 돕는 평범한 인물이 아니다. 그녀의 고요한 삶은 곧 폭발할 듯한 감정의 그릇이고, 영화는 그 그릇이 흔들리고 깨져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수하의 시선은 외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 자신의 과거, 정체성, 그리고 미래를 향해 점점 더 깊어진다.
얀 케랑 (Yan Kerrand) - 로쉬디 젬 (Roschdy Zem)
얀 케랑은 프랑스인 만화가이자 그래픽 노블 작가로, 속초의 한 펜션에 여행자 혹은 작업을 위한 체류자로 찾아온다. 프랑스에서 왔고, 예술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다. 케랑은 단순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수하에게 ‘가능성’, ‘뿌리’, ‘다른 세계’의 문을 보여주는 창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정체성을 안정시켜주지는 않는다. 그는 또 다른 낯선 존재로 남고, 수하의 내면에 더 많은 질문을 던진다.
수하의 어머니 - 박미현
수하의 어머니는 생선 장수다. 속초의 항구 도시에서 생선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딸 수하를 어릴 적부터 한국 사회 속에서 키워왔다. 그녀는 속초라는 공간, 지역의 생존 방식, 그리고 고된 노동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인물이다. 어머니의 존재는 영화 속에서 단순한 부모가 아니라, 삶의 뿌리이자 현실의 무게다. 수하는 어머니의 생계와 책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동시에 그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수 없음을 느낀다. 이 갈등이 수하 내면의 불안과 혼란, 정체성 탐색의 중요한 밑바탕이 된다.
준호 - 공도유
준호는 수하의 남자친구로, 속초를 떠나 서울이나 더 큰 곳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미래지향적 인물이다. 그는 수하와의 관계에서 안정과 동행을 기대하지만, 수하가 겪는 내면적 변화와 정체성의 혼란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존재는 수하가 가진 ‘현실’과 ‘일상’의 상징이며, 동시에 그녀가 벗어나려는 굴레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준호와 수하의 관계는 수하가 변화하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총평
영화 《속초에서의 겨울》은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고 서정적인 멜로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체성과 고립, 자기 발견이라는 무겁고 보편적인 테마를 깊고 섬세하게 다루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사건이 크게 요동치거나 감정이 과장되는 대신, 인물들의 미세한 심리 변화와 관계의 간극에 집중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의 뒷면을 들여다보도록 만든다. 많은 평론가들이 이 영화의 인물 묘사와 분위기 연출을 “설명 없이 감정의 결을 체감하게 만드는 방식”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이 영화가 상업적 흥행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인물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관객에게 해석할 여백을 남겨둔 점을 높이 평가한다. 특히 속초의 겨울이라는 배경은 단순한 촬영지 역할을 넘어, 영화의 정서적 구조를 완성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차갑고 적막한 겨울 바다, 계절이 끝난 후 관광객이 사라진 도시는 주인공 수하의 내면과 겹쳐지면서, 시각적 풍경을 정서적 상징으로 탈바꿈시킨다. 덕분에 영화의 배경 자체가 하나의 인물처럼 존재감을 얻으며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또한 평론가들은 주인공 수하의 감정 전달 방식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수하는 격정적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다 마음속의 감정을 꾹 눌러 담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 억눌림이 영화 속 다층적인 관계에서 서서히 흔들리며 균열을 드러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도 자연스럽게 수하의 갈등과 정체성의 혼란을 함께 체험하게 된다.
많은 리뷰는 “관객을 감정의 목격자가 아닌 공감자로 끌어들이는 영화”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며, 바로 이 점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평가한다.
케랑과 수하 사이의 관계는 로맨스로 규정하기 어렵지만, 감정적 여운 면에서 많은 관객과 평론가를 사로잡았다. 설렘과 동경, 호기심과 불안, 다가감과 거리 두기 사이를 오가는 미묘한 감정의 흐름이 지나치게 명확한 관습적 관계 규정 없이 표현된 점이 “현실적이고 감각적인 관계 묘사”로 높게 평가된다.
반면 이 여백이 너무 커 감정의 정점을 기대했던 관객에게는 다소 답답하거나 거리감 있게 느껴졌다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평론가가 “이 영화에서 감정을 규정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핵심적인 미학”이라고 평가했다.
영화의 촬영 방식 또한 호평을 받았다. 과한 음악이나 화려한 연출 없이, 바람 소리, 파도 소리, 조용한 실내 공기를 담아내며 인물의 정서와 주변 환경을 연결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특히 인물의 얼굴을 가까이 잡는 대신 등을 잡거나 먼 거리에서 촬영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인물이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정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적 선택으로 읽힌다. 이런 섬세한 시각 언어는 많은 평론가에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
평론가들의 평균 평점은 7.6점에서 8.2점 사이로 형성되어 있으며, 대체적으로 “조용하지만 길게 남는 영화”, “빠르게 소비되는 감정 대신 잔상을 선사하는 작품”이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일부는 “서사가 너무 절제되어 있어 감정 몰입의 문턱이 높은 편”이라고 지적했으나, 그마저도 영화가 의도한 미학적 선택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비판보다는 취향의 차이에 가까운 의견으로 남는다.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속초에서의 겨울》은 강렬한 감정 소모나 드라마틱한 사건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기대한다면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의 감정선을 탐구하는 영화, 여백이 많은 영화, 풍경과 인물의 정서를 함께 감각하며 천천히 바라보는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매우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작품으로 자리한다.
속초의 겨울이라는 계절적 정서, 관계의 애매함이 지닌 아름다움, 정체성을 찾아가는 조용한 여정이 어우러져, 관객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여운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따뜻하지만 아릿한 감정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