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요약
이야기는 거대 제약회사 CEO인 미셸 풀러(엠마 스톤)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외적으로는 성공과 권력을 가진 인물이지만, 곧 그녀의 안정된 삶은 두 남자의 극단적인 믿음과 망상으로 인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테디 갯츠(제시 플레먼스)와 그의 사촌 돈(에이든 델비스)은 온라인과 사회적 정보망을 통해 자신들만의 음모론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미셸이 단순한 기업인이 아니라 지구를 파괴하려는 외계 세력, 일명 ‘안드로메단’의 일원이라고 확신하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그녀를 납치할 계획을 세운다.
그들의 계획은 치밀했다. 미셸은 지하실에 가둬지고, 머리를 깎인 채 신체와 정신을 억압당한다. 테디와 돈은 그녀가 외계인과 신호를 주고받지 못하도록 온몸을 감싸고, 월식(lunar eclipse) 이전까지 그녀로부터 ‘외계인의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납치 사건은 단순한 범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현대 사회 속 인간의 불신과 광기, 그리고 믿음이 어떻게 현실을 뒤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영화는 좁은 지하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미셸과 납치범들 사이의 심리전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미셸은 자신의 억울함과 인간성을 호소하지만, 테디는 자신의 망상을 현실로 착각하며 점점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그녀를 압박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단순한 피해자-가해자 구조를 넘어, 누가 진짜 광기인지, 누가 정상인지에 대한 혼란을 관객에게 던진다. 미셸 역시 단순한 약자가 아니라, 냉정하고 계산적이며 권력과 자기 방어를 위해 맞서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녀의 대응은 관객에게 “누가 진짜 위협적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한다.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테디와 돈의 광신은 점점 더 폭력적이고 극단적으로 변해간다. 미셸을 향한 신체적·정신적 압박은 날로 심해지고, 지하실은 생존과 절망이 혼재된 악몽의 공간으로 변한다.
영화는 이러한 상황을 통해 인간의 믿음이 얼마나 강력하게 현실을 왜곡하고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동시에 미셸이라는 엘리트 CEO 캐릭터는 그들이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사회 구조와 권력의 상징으로 부각되어, 단순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분법적 판단을 무력화시킨다.
영화는 결말에 이르러 명확한 구원이나 해피엔딩을 제공하지 않는다. 사건의 충돌과 혼돈 속에서 관객은 불확실함과 허무를 마주하게 된다. 믿음이 망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리고 정의와 악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테마적 측면에서 부고니아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음모론과 불신, 정보 과잉과 인간 고립이 개인과 집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성찰하게 한다.
주요 인물 소개
미셸 풀러 (Michelle Fuller) - 엠마 스톤 (Emma Stone)
미셸 풀러는 영화 속에서 대형 바이오 제약회사의 최고경영자(CEO)다. 풍부한 자본과 권력, 사회적 지위를 지닌 인물로, 영화 초반에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성공을 이룬 ‘엘리트 여성’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곧 두 명의 음모론자(테디와 돈)에 의해 납치당하게 된다. 납치 후 그녀는 머리를 깎이고 지하실에 감금되며, 외모도, 자유도, 권력도 모두 박탈당한다. 이는 단순한 피해자 체험이 아니라, 사회적 권력과 자본, 제도 속 ‘엘리트’의 상징이 연약한 인간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테디 (Teddy) - 제시 플레먼스 (Jesse Plemons)
테디는 영화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하는 핵심 인물로, 음모론에 사로잡힌 망상자이자 납치범이다. 그는 제약회사, 대기업, 과학 권력 등에 대한 깊은 불신을 품고 있으며, 그 불신은 “미셸이 사실은 외계인”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지며 극단적 행동으로 점화된다. 그는 양봉업자(apiarist)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벌을 기르고, 벌통을 관리하며, 제약회사와 환경 문제, 생태, 자연 파괴 등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그의 정체성의 일부다. 이 설정은 단순한 음모론자를 넘어 현대 사회가 직면한 자본, 환경, 불신, 권력에 대한 분노와 공포를 상징하는 인물로 읽히게 만든다.
돈 (Don) - 에이든 델비스 (Aidan Delbis)
돈은 테디의 사촌이자 납치 공모자이지만, 테디처럼 강한 확신과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은 아니다. 그는 테디의 음모론과 계획에 동조하며 행동하지만, 내면에서는 혼란과 망설임, 두려움, 죄책감 같은 감정을 동시에 겪는다. 이런 면이 그를 단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이면서도 공모자, 현실과 망상 사이에 놓인 복합적 존재로 만든다. 영화 속에서 돈은 관객의 감정적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테디의 맹목적 광기와 미셸의 권력에 맞서기보다는, 그의 불확실함과 두려움, 인간적 연약함은 이 극단적 상황을 단지 ‘극한’이 아닌 ‘사람들이 현실 속에서 가질 수 있는 감정’으로 보여준다.
샌디 (Sandy) - 알리시아 실버스톤 (Alicia Silverstone)
샌디는 테디의 어머니로, 그의 망상과 분노, 음모에 대한 집착의 뿌리가 되는 과거를 가진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는 그녀가 과거 제약회사의 임상 실험에 연루되었고, 그로 인해 몸과 정신에 상처를 입은 피해자라는 설정이 등장한다. 이 설정은 단순한 납치 스릴러를 넘어서 제약 산업, 과학 권력, 자본주의의 윤리적 문제, 제도적 폭력 이런 구조적 문제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기능을 한다. 샌디는 직접적으로 납치와 심문에 가담하지는 않지만, 그녀의 존재와 과거 경험은 왜 테디가 극단적인 믿음과 증오, 폭력으로 나아갔는가 하는 동기와 배경을 제공한다. 즉, 개인의 망상이 단순한 광기가 아니라, 구조적 부조리와 상처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메시지를 상징한다.
총평
영화 《부고니아》는 단순한 스릴러나 B‑급 공포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현대 사회의 불안과 불신, 권력과 계급, 음모론과 광기, 자본과 윤리의 균열을 날카롭고 기괴하게 응시하는 작품이다. 동시에, 과거 한국의 컬트 SF 공포 코미디였던 지구를 지켜라! (2003)의 영어‑리메이크라는 점에서, 원작의 충격과 광기를 현대의 맥락과 미학으로 재창조한 영화이기도 하다.
우선 이 영화의 큰 강점은 연기와 연출의 강렬함이다. 주인공인 제약회사 CEO ‘미셸 풀러’ 역을 맡은 엠마스톤은, 성공한 기업인으로서의 냉철함과 동시에 감금과 심문을 당하는 희생자, 그리고 생존자로서의 절박함과 공포를 몸으로 표현해 낸다.
그녀가 삭발하고, 머리 없는 채로 공포와 위협, 무력감 속에서도 권위와 생존 의지를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은, 단순한 “착한 피해자”에 머무르지 않는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또한, 납치범이자 음모론자 ‘테디’ 역을 연기한 제시 플레먼스는 그야말로 이 영화의 다른 중심축이다. 그는 벌을 기르는 양봉업자이자 정보 과잉과 사회 불신 속에서 극도로 변질된 신념을 가진 인물로, 그의 광기와 집착, 망상은 그저 희생자를 향한 폭력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구조적 불안, 자본과 제약 산업에 대한 불신, 정보 격차와 소외가 만들어낸 비극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그의 절박함, 맹목성, 그리고 공포에 가까운 확신은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면서도, 이 신념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강하게 각인시킨다.
영화의 구조와 연출 또한 주목할 만하다. 런타임은 약 118분이며, 대부분의 갈등은 납치 후 지하실, 어두운 공간, 폐쇄된 집 내부에서 진행된다. 밝은 사무실과 고급 주택, 화려한 겉모습 대신 낡은 벽, 공포스러운 지하실, 조명과 그림자, 좁고 비좁은 공간 이런 대비는 “우리가 믿고 있던 세계”와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공포와 불신” 사이의 단절을 시각적으로 체감하게 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단순한 공포극이거나 음모론 풍자가 끝이 아닌 이유는, 정서적/심리적 모호성과 도덕적 양가성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셸 = 악인가?”, “테디 = 광신자이거나 피해자인가?”라는 선악 구분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쉽게 내려지지 않는다.
미셸은 단지 피해자라기엔 냉혹하고 계산적이며, 테디는 단지 가해자라기엔 과거의 상처와 분노, 자본 구조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비극의 희생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모호함은 관객이 단순히 사건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 사회 구조, 권력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비평가들의 반응 역시 대체로 긍정적이다. 영화 평점 집계 사이트에서는 “믿기 힘들 만큼 기묘하고 불안정한 작품이지만”, “엠마 스톤과 제시 플레먼스의 연기 덕분에 중심을 잡는다”고 평가한다.
특히, 이 영화는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Yorgos Lanthimos)의 스타일이 극대화된 작품으로, 블랙코미디와 공포, 사회 풍자와 심리 스릴러가 뒤엉킨 “현대적 플롯과 고전적 불안이 만난” 영화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이 영화가 모두에게 맞는 것은 아니다. 그 어두운 미장센, 폭력과 절망, 불신과 혐오, 그리고 희망 없는 결말은, 편안한 감상이나 오락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일부 관객은 “지루하고 불편하다”, “잔인하고 무거워서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원작이 가진 과장된 B급 공포, 코믹함, 비판적 풍자의 톤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더욱 절제되고 냉정하게 재구성된 이 영화가 “우울하고 무거운 변형”으로 느껴질 수 있다. 리메이크가 리-창작(Re‑creation)임을 강조하는 만큼, 원작 고유의 톡톡 튀는 개성과 컬트적 유머감각이 다소 희석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부고니아”가 2025년 영화 속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병리 정보 과잉과 음모론, 불신과 혐오, 자본과 권력에 대한 경계, 인간 소외와 분열에 대해 비극적이면서도 통찰력 있는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쉽게 가시지 않는 불편함과 고통, 그리고 자신에게 던지는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가?”라는 물음은, 이 작품을 단순한 스릴러나 코미디를 넘어 시대의 초상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