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요약
영화의 중심에는 아이린 켈리(Irene Kelly)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아이린은 딸을 잃은 뒤 극심한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으며, 딸을 죽인 네빌(Neville)에 대한 복수만이 자신의 삶을 붙잡아 주는 유일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과학적 기술을 통해 평행우주를 오갈 수 있는 장치를 손에 넣게 되고, 이 장치를 이용해 다른 현실 속에서 동일한 범죄를 저지른 네빌을 찾아 처단하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딸의 원수를 갚기 위한 행위로 출발했지만, 평행우주마다 거의 동일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상황 속에서 네빌을 찾아내 처단하는 과정은 곧 아이린 자신의 정신과 심리에 극단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단 한 번의 복수로 끝나지 않고, 다른 세계 속 네빌을 찾아 또다시 살해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아이린은 점점 복수 자체에 중독되고, 자신의 인간성과 감정적 균형을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즉, 딸을 잃은 슬픔으로 시작한 여정이 어느 순간 살인과 복수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행위가 되어 버립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아이린은 상처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전우주를 넘나들지만, 그 과정은 결국 그녀를 더 깊은 어둠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평행우주 속에서 반복되는 장면은 영화가 단순한 액션물이 아니라 중독과 집착, 상실의 반복을 은유하는 장치로 사용됩니다.
관객은 아이린이 또 다른 세계를 향해 포털을 열 때마다, 그녀가 원하는 ‘완벽한 복수’가 현실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계속해서 의문을 갖게 됩니다. 이 영화는 복수의 끝에 진정한 치유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진정한 해답을 주지 않는 서술을 택합니다.
여정 중 아이린은 뜻밖의 동반자를 만나게 됩니다. 길을 헤매다 우연히 한 위기에 처한 10대 소녀 미아(Mia)를 구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신만의 목표에만 매몰되어 있던 아이린이지만, 미아와 함께 다니면서 점차 딸과 비슷한 나이의 소녀와의 관계가 생기고, 미아 역시 아이린의 복수 계획에 동참하게 됩니다.
미아는 불안정한 삶을 살아온 인물이지만, 아이린과 함께하면서 생존하려는 의지와 복수심이 뒤섞인 감정을 드러냅니다. 이 두 인물의 관계는 그저 ‘복수를 위한 동행’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정체성과 목적을 재정의하는 과정으로 발전합니다.
이 영화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멀티버스 설정을 활용한 인간 심리의 극한 탐구에 있습니다. 다른 현실 속에서 반복되는 복수는 처음에는 감정적 해소처럼 보였으나, 점차 아이린에게서 인간성이 사라지는 과정으로 묘사됩니다.
네빌을 끝없이 찾아 죽이는 동안에도 딸은 돌아오지 않고, 아이린의 내면은 붕괴해 가는 모습을 통해 영화는 복수의 무의미함과 공허함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단순히 ‘범인을 처단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관념적 정의감을 제공하는 대신, 복수의 여정이 오히려 주인공을 더 무너뜨리고 정체성 자체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결말에 이르러 아이린은 마침내 딸을 살릴 수 있는 현실을 찾기를 희망했지만, 영화의 서술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멀티버스를 헤매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조차 분명히 알기 어려운 상태가 되고, 관객은 진정한 ‘해결’이나 ‘구원’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만을 남기게 됩니다.
이러한 열린 결말은 이야기의 극단적인 설정과 맞물려 관객으로 하여금 복수와 치유,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주요 인물 소개
아이린 켈리(Irene Kelly) – 미카엘라 맥마너스(Michaela McManus)
아이린 켈리는 영화의 중심축이 되는 주인공으로, 딸을 잃은 비극적인 상실을 계기로 복수의 길로 들어서는 인물이다. 그녀는 평행우주를 이동할 수 있는 기술을 이용해 딸을 살해한 범인을 여러 세계에서 반복적으로 찾아 처단한다. 처음의 아이린은 상실로 인해 무너진 한 인간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복수는 목적이 아닌 삶의 방식이 되고, 그녀의 정체성 자체를 잠식해 간다.
미아(Mia) – 스텔라 마커스(Stella Marcus)
미아는 아이린의 여정 속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10대 소녀로, 위태로운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사회적 보호망 밖에 놓인 존재이며,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성격을 지닌다. 아이린에게 구조된 이후 복수의 여정에 동행하게 되면서, 미아는 단순한 동반자가 아니라 아이린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가 된다. 아이린의 분노와 광기를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 길이 파멸로 향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캐릭터다.
네빌(Neville) – 제레미 홈(Jeremy Holm)
네빌은 아이린의 딸을 살해한 인물로, 영화 속 가장 핵심적인 갈등의 중심에 있다. 이 인물의 특징은 하나의 존재이면서도 여러 평행우주 속에서 다른 삶을 사는 다양한 모습으로 반복 등장한다는 점이다. 어떤 세계에서는 범죄자이며, 어떤 세계에서는 평범한 시민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아이린의 시선에서 그는 언제나 ‘딸을 죽인 존재’라는 하나의 정체성만을 가진다.
조나단(Jonathan) – 짐 커밍스(Jim Cummings)
조나단은 아이린이 여러 세계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인물 중 하나로, 현실적인 인간 군상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그는 초현실적인 멀티버스 구조 속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반응’을 보이는 인물이며, 아이린의 극단적인 행동과 대비를 이루는 존재다. 조나단의 존재는 영화가 완전히 비현실로 치닫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며, 아이린의 변화가 얼마나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빌리(Billie) – 테일러 미시악(Taylor Misiak)
빌리는 아이린이 마주치는 인물 중 하나로, 평행우주 속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특별한 힘이나 서사를 가진 캐릭터는 아니지만, 평범한 인간의 삶을 대표하는 존재로 배치된다. 그녀는 아이린의 세계와 대비되는 ‘정상성’을 상징하며, 관객에게 아이린이 얼마나 현실과 단절되어 가고 있는지를 체감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달라(Darla) – 덴드리 테일러(Dendrie Taylor)
달라는 여러 세계 속에서 아이린과 접촉하는 인물로, 주변 인물의 대표적인 캐릭터다. 그녀는 직접적인 서사의 중심에 서지는 않지만, 각 장면에서 분위기와 정서를 형성하는 기능적 인물로 작용한다. 현실적인 대사와 반응을 통해 아이린의 비정상적인 행보를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안나(Anna) – 그레이스 반 디엔(Grace Van Dien)
안나는 감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인물로, 아이린의 과거와 감정적 기억과 연결된 존재로 해석된다. 그녀는 직접적인 복수 구조보다는 상실, 기억, 감정의 잔재를 상징하는 인물로 기능하며, 아이린의 내면 서사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안나는 이야기의 감정선을 부드럽게 연결하면서도, 상실의 아픔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정서적 장치로 활용된다.
총평
영화 《리덕스 리덕스(Redux Redux, 2025)》는 멀티버스라는 SF적 설정을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심리를 해부하는 도구로 활용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화려한 세계관 확장이나 복잡한 과학 이론보다는, 한 인간의 상실과 복수, 그리고 그 복수가 만들어내는 내면의 붕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겉으로 보면 평행우주를 오가며 벌어지는 복수극이지만, 실제로는 복수라는 감정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파괴하는지를 집요하게 응시하는 심리 드라마에 가깝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반복’의 구조다. 주인공 아이린은 딸을 잃은 뒤, 딸을 살해한 범인을 여러 평행세계에서 반복적으로 찾아내 처단한다. 이 설정은 일반적인 복수 서사의 구조와는 다르다. 보통의 복수 영화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직선적으로 나아간다면, 《리덕스 리덕스》는 같은 행위를 끝없이 반복하게 만들며, 그 반복 속에서 주인공의 정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살인을 거듭할수록 복수는 정의나 정의감이 아니라 습관이 되고, 목적이 아니라 중독이 된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복수는 더 이상 감정의 해소가 아니라, 존재 이유 자체가 되어 버린다.
연출 또한 이 반복 구조를 효과적으로 시각화한다. 서로 다른 세계이지만 거의 비슷한 공간, 비슷한 상황, 비슷한 얼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관객은 점점 방향 감각을 잃게 된다. 이는 단순한 연출 기법이 아니라, 주인공의 정신 상태를 관객이 직접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처럼 기능한다.
세계는 달라지지만 감정은 변하지 않고, 환경은 바뀌지만 결과는 같으며, 장소는 이동하지만 상실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구조는 멀티버스를 ‘확장의 공간’이 아니라 ‘탈출 불가능한 감정의 감옥’처럼 느끼게 만든다.
주연 배우 미카엘라 맥매너스의 연기는 이 영화의 중심축이다. 그녀가 연기한 아이린은 전형적인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아니라, 상실로 인해 서서히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에 가깝다. 분노와 슬픔, 냉정함과 공허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감정 상태를 과장 없이 표현하며, 캐릭터가 점점 감정을 잃어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특히 감정 폭발 장면보다도, 무표정과 침묵, 반복되는 행동 속에서 드러나는 공허함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이는 이 영화가 감정의 격렬함보다는 감정의 소멸 과정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다소 낯설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야기의 전개는 빠르지 않고, 명확한 기승전결 구조도 약하다. 갈등은 해결되기보다는 반복되고, 목표는 달성되기보다는 흐려진다. 이 때문에 일부 관객에게는 단조롭고 무거운 영화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이 이 영화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관객에게 해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진다. 복수는 과연 치유가 될 수 있는가, 반복되는 폭력은 인간을 어디까지 파괴하는가, 상실은 과연 극복 가능한 감정인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결말 또한 명확한 해소를 제공하지 않는다. 영화는 어떤 승리나 구원보다는 공허한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이는 관객에게 불친절한 선택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의 주제와는 매우 일관된 결말이다. 복수는 끝나지 않고, 감정은 정리되지 않으며, 상실은 해소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그것이 현실에 더 가까운 모습이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종합적으로 《리덕스 리덕스》는 대중적인 오락성과는 거리가 있는 작품이다. 대신 감정적으로 무겁고, 철학적으로 어두우며, 구조적으로 반복적인 서사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한다. 멀티버스를 화려한 상상력의 공간이 아니라, 상실과 집착이 무한히 증식되는 구조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도 의미 있는 실험작이라 할 수 있다.
모든 관객에게 친절한 영화는 아니지만, 복수라는 감정을 단순한 정의 구현이 아닌 심리적 파괴 과정으로 바라보고 싶은 관객에게는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결국 “복수는 구원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감옥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차갑고도 집요하게 전달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