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요약
고도로 훈련된 무명의 킬러(마이클 패스벤더)는 파리의 고급 호텔방에서 며칠간 저격 임무를 준비한다. 그는 요가를 하고, 정해진 시간에 햄버거를 먹고, ‘The Smiths’의 음악을 반복해 들으며 자신을 통제한다. “즉흥은 금물, 예측하라, 공감하지 마라”는 철칙은 그의 존재 전부를 지탱하는 원칙이다. 이번 임무 역시 치밀하게 계획되어 있었지만, 그는 실수로 목표물을 놓치고 무고한 여성을 총으로 오발하게 된다. 곧장 현장을 정리하고 장비를 폐기한 뒤, 도미니카 공화국에 있는 은신처로 급히 귀환한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또 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 집은 습격으로 엉망이 되었고, 그의 연인 막달라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간 상태다. 그녀의 오빠 마커스는 두 명의 괴한 거구의 남성 ‘짐승(The Brute)’과 냉철한 여성 킬러 ‘전문가(The Expert)’가 킬러의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보낸 청부업자들이었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킬러를 제거하려 했지만, 부재중이던 연인을 대신 공격했던 것이다. 킬러는 이 모든 사태가 자신을 고용한 클라이언트 측의 결정이라 판단하고 조직적인 복수에 돌입한다.
첫 타깃은 뉴올리언스에 있는 핸들러이자 법률대리인인 에드워드 호지스다. 킬러는 변장한 채 그의 사무실에 침입해 총 대신 못박이 총과 도구들을 사용해 그를 위협하고, 정보를 얻으려 시도하지만 결국 호지스를 살해하게 된다. 그의 비서 돌로레스는 자신의 자녀를 위해 조용한 죽음을 요청하며 협조하고, 킬러는 요청에 따라 그녀를 자살처럼 위장해 제거한다. 이후 그는 호지스의 문서를 통해 살인자들의 이름과 위치를 파악한다.
다음 표적은 플로리다 팜비치에 사는 ‘짐승’이다. 그는 거대한 체구를 지녔고, 폭력적인 성향이 강하다. 킬러는 밤에 그의 집에 잠입해 치열한 격투 끝에 그를 살해하고, 흔적을 지우기 위해 현장에 불을 지른다. 이후 그는 뉴욕 비컨으로 이동해 마지막 킬러인 ‘전문가’를 찾아간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난 두 사람은 마치 오래된 동료처럼 대화를 나눈다. ‘전문가’는 직업적인 냉소와 회한을 섞어 자신의 철학을 내비치고, 킬러에게 일종의 경외심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녀가 칼을 꺼내는 순간 킬러는 망설임 없이 그녀를 제거한다. 대화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인간적 접촉은 결국 또 하나의 살인으로 귀결된다.
복수의 마지막 단계는 시카고에 있는 벤처 자본가 헨더슨 클레이본이다. 그는 킬러에게 임무를 의뢰한 본래의 클라이언트로, "나는 그냥 뒷정리만 원했지 당신을 죽이라고 한 건 아니었다"며 항변한다. 킬러는 그런 변명에 개의치 않고, 클레이본을 살해하지는 않지만,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남긴 채 자리를 떠난다. 그는 마지막 타깃마저 용서 아닌 경고로 마무리하며, 잔인하지만 일말의 통제를 유지하려 한다.
모든 복수를 마친 킬러는 다시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돌아가, 병상에 누운 연인 막달라의 곁을 조용히 지킨다. 그의 싸움은 끝났고, 다시는 감정 없이 살아가려는 고독한 일상으로 회귀한다. 그러나 관객은 그가 정말로 인간성을 지웠는지, 아니면 상실의 고통을 껴안고 있는지를 묻게 된다. 킬러는 사람을 죽이는 데는 익숙하지만, 감정을 죽이는 데는 여전히 서툴러 보인다.
주요 인물 소개
무명 킬러 - 마이클 패스벤더 (Michael Fassbender)
영화의 중심인물이자 이름 없는 암살자. 파리에서의 저격 실패 이후, 자신만의 ‘계획대로, 즉흥 없이’라는 신조와 ‘예측하라’는 철칙으로 철저하게 감정을 절제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와 달리 복수를 위해 움직이면서 내면의 균열이 생기고, 후반부에선 목소리 내레이터로서 회의감과 고독을 은연중 드러낸다.
매그달라 - 소피 샤를로치 (Sophie Charlotte)
킬러의 연인으로, 도미니카 공화국의 은신처에서 공격을 받은 채 중태에 빠진다. 직접적인 대사는 없지만, 그녀의 피해로 인해 킬러는 ‘인간적인 약점’을 가진 캐릭터로 변화하며 복수극의 동기를 제공한다.
마커스 - 에밀리아노 페르니아 (Emiliano Pernía)
매그달라의 오빠이자 보호자 역할을 한다. 은신처 습격 직후 킬러에게 사건 전말을 설명하며, ‘짐승’과 ‘전문가’ 두 청부살인자의 존재를 알린다. 정보 전달자로서 줄거리 전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에디 호지스 - 찰스 파넬 (Charles Parnell)
킬러의 핸들러이자 변호사. 대학 시절 교수였던 인연으로 신뢰를 주었지만, 의뢰인으로부터 킬러를 견제하라는 지시를 받고 복잡한 갈등에 휘말리게 된다. 킬러가 뉴올리언스 사무실에서 직접 제거하는 타깃이며, 그의 죽음은 복수의 서막이 된다.
‘전문가’ - 틸다 스윈튼 (Tilda Swinton)
냉철하고 우아한 여성 청부살인자로, 킬러의 복수 대상 중 한 명.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킬러와 만찬을 주고받는 장면은 두 암살자 간의 예의와 인간미 사이 긴장이 교차하는 심리적 하이라이트가 된다. 자신의 철학과 회한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킬러와 대등한 내적 고뇌를 공유하지만, 결국 서로의 직전에 총을 겨눔으로써 ‘동업자의 공감’이 붕괴되는 순간을 연출한다.
‘짐승’ - 살라 베이커 (Sala Baker)
청부된 괴력의 남성 암살자로, 플로리다 자택에서 킬러와 물리적 격투를 벌이다 사망한다. 대사는 거의 없지만, 상징적으로 킬러 복수 여정의 중간 관문 역할을 하며 칼을 겨루는 흥미로운 액션을 제공한다.
헨더슨 “클레이” 클레이본 - 알리스 하워드 (Arliss Howard)
영화의 최종 타깃이자, 모든 사태의 발단을 제공한 벤처 자본가 겸 킬러의 ‘클라이언트’. 킬러는 그에게 직접적인 살해를 삼가면서 “다음엔 예외 없이 죽일 것”이라는 경고만을 남긴다. 클레이본과의 대화는 돈이 인간관계와 생명마저 소비하는 현대의 메커니즘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돌로레스 - 케리 오맬리 (Kerry O'Malley)
에디 호지스의 비서. 킬러의 침입 당시 현장에 있었고, 자신이 자녀들과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게 조용한 죽음을 부탁한다. 킬러는 그녀의 요청을 수용해 자살처럼 보이게 목을 꺾는다.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돌로레스는 시스템 속 무력한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총평
데이비드 핀처 감독과 마이클 패스벤더가 재회한 《더 킬러》는 냉정하고 정교한 암살자 서사극이다. 한 발의 오발이 모든 것을 바꾸는 사건 이후, 이름 없는 킬러는 복수의 연쇄를 시작하며 감정과 윤리의 경계를 시험받는다.
기술적으로나 스타일 면에서 핀처의 장기가 십분 발휘되었다. 로튼토마토에서 85% 신선도, 메타크리틱 73점의 평가를 받았고 , 평론가들은 “절제된 긴장을 구사하는 정교한 스릴러”라 평가한다. 특히 플로리다에서 펼쳐지는 한 칼싸움 장면은 “오랜만에 본 최고의 액션 시퀀스”라는 찬사를 받았다.
여기에 정밀하고 세밀한 묘사를 더한 서사 구조가 눈에 띈다. 로저 이버트는 “상세한 절차 중심 스릴러이자, 핀처의 가장 개인적인 작품”이라고 평했으며 , Forbes는 “강렬하지만 느린 번(템포)의 액션”이라면서도 “고요한 명료함이 극 전체를 관통한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반대로 내러티브가 다소 얇고 감정 이입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Decider는 “메서드적 흐름이 무자비하지만, 얕다”라고 평했고 , Polygon은 “놀라운 설정이 지속적인 반전 없이 종반으로 흘러간다”라고 평가했다.
핀처의 미니멀리즘적 연출은 또 하나의 특징이다. 줄거리가 간결하며, 내레이션과 반복적 루틴에 중심을 두지만, 그러한 방식 자체가 영화의 예의와 긴장을 은유적으로 구성한다. Guardian은 “워딩이 많고 다소 불안정한 내레이션과 스미스의 선곡이 세상을 멀리 두는 분위기를 만든다”라고 지적했고 , 타임은 Tilda Swinton과의 식사 장면이 킬러의 도덕적 균열을 드러내는 결정적 순간이라 분석했다.
Fassbender는 감정 억제형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탁월했다. 냉담함과 복수 이후에도 남은 무관심 사이, 미세한 파동을 얼굴만으로 드러낸다. Guardian과 로튼토마토는 그의 연기를 “냉혈 하고 굳어 있는 모습”이라고 평했고 , Time은 식사 장면에서 Swinton을 주시하는 눈빛이 주는 여운이 컸다고 전했다.
음향과 음악도 핀터치다. Trent Reznor & Atticus Ross의 전자음 계열 스코어는 미묘한 긴장감을 더하며, The Smiths의 선곡은 킬러의 내적 고립과 허무함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결론적으로 《더 킬러》는 핀처의 스타일과 Fassbender의 얼굴이 조화된 서늘한 스릴러다. 많은 액션을 기대하면 다소 실망할 수 있지만, 절제된 드라마와 정교한 연출, 그리고 성찰적 내레이션을 통해 모던한 히트맨 장르를 재정의한다. 감정을 철저히 제거한 킬러가 결국 복수라는 인간적 동기에 휘둘리는 구조는 관객에게 냉정보다 더 깊은 공허함과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물론 감정선과 플롯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피카소적 터치의 잔혹함과 모던함이 결합된 걸작”이라는 평가는 설득력이 있다. 핀처 팬이나 Fassbender 팬, 그리고 스타일리시한 심리 스릴러를 선호하는 관객에겐 반드시 봐야 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