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요약
줄거리는 아버지가 아내를 잃고 남겨진 두 아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겪는 감정적 여정으로 시작됩니다. 아내의 사망 직후 장례식이 끝난 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지만 일상은 이미 무너진 상태입니다.
집안에서는 설거지와 빨래 같은 기본적인 일조차 버거울 만큼 그의 삶은 피폐해져 있습니다. 아내가 가족의 중심이었음을 절감하게 하는 동시에, 이제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정상적인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은 그를 압도합니다.
아버지는 원래 그래픽 노블(만화) 작가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창작의 압박 속에서도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의 내적 갈등은 작품 활동을 어렵게 만듭니다. 과거에 아내와 보냈던 행복한 기억과 현재의 공허함 사이에서 그는 고통스러워하며 일상의 균형을 잃어갑니다. 슬픔은 단순한 상실감이 아니라 그의 현실 인식을 계속해서 흐트러뜨리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는 점차 초현실적 존재의 출현으로 표현됩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집 안의 그림자 속에서 거대한 ‘까마귀(Crow)’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 까마귀는 단순한 새가 아니라 아버지의 상상과 불안이 구체화된 존재로, 처음에는 불길하고 위협적으로 느껴집니다.
까마귀는 말 그대로 그림자 속에서 움직이며 가족을 지켜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곧 이 존재는 그저 상상 속의 산물 이상으로, 아버지의 현실과 심리를 교란하는 핵심 장치로 변합니다.
이 까마귀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야기의 중심 갈등이 됩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심리적 붕괴와 싸우는 한편, 까마귀를 통해 죽음과 슬픔이 내면에 드리운 진정한 그림자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의 집 안에서 발생하는 이상한 현상과 까마귀의 존재감은 곧 단순한 환상이 아닌 아버지의 정신적 상태를 반영하는 은유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까마귀는 때로는 조롱하며 그의 약점을 드러내고, 때로는 슬픔을 대면하도록 강요하면서 이야기를 이끕니다.
영화는 단순히 시각적 괴물을 통해 공포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상실의 감정이 인간의 마음에 얼마나 깊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아버지는 슬픔 앞에서 무너지고, 그 무게는 그의 두 아들에게까지 전이됩니다.
아이들은 아직 아내이자 어머니를 잃은 현실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아버지는 때때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가운데 아이들과의 관계를 지켜야 하는 책임감과 싸우게 됩니다.
까마귀는 작품 전반에서 은유적 존재로 기능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이 존재가 점점 더 현실과 뒤섞여 등장하며, 아버지의 감정적 붕괴를 시각적인 형태로 보여 줍니다. 이 까마귀는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한 불길함을 넘어 아버지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듯이 움직입니다.
이는 곧 아버지가 내부의 공포와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직면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며,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 상실과 회복, 상실과 화해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이야기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까마귀가 단순한 공포의 상징을 넘어 일종의 안내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즉, 슬픔을 외면하고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도록 유도합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현실과 괴리된 행동을 반복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직면해야 할 두려움(아내의 죽음,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아이들과의 관계)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어느 정도 자신의 감정을 통합하고 재건해 나가려는 의지를 보입니다.
주요 인물 소개
아버지 (Dad) - 베네딕트 컴버배치 (Benedict Cumberbatch)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일상생활을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상태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집안의 사소한 일상들은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고, 그는 슬픔이라는 심리적 소용돌이에 갇힌 채 전혀 다른 존재와 마주합니다. 영화 속에서 그의 인물은 감정의 폭이 극단적으로 넓으며, 슬픔과 현실 사이에서 점차 균형을 찾기 위한 여정을 보여 줍니다.
첫째 아들 - 리처드 박스올 (Richard Boxall)
그는 이야기 내에서 슬픔의 영향을 가장 처음부터 경험하는 아이 중 한 명으로, 자신도 감정적으로 흔들리지만 형제애와 가족을 지키려는 본능적인 책임감을 보여 줍니다. 아버지의 변화를 직접 목격하며, 종종 보호자이자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그의 시선은 성인 관객에게도 감정적 공감을 유도하는 장치로 활용되며, 성장 과정 속에서 슬픔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표현합니다.
둘째 아들 - 헨리 박스올 (Henry Boxall)
형과 함께 슬픔의 무게를 나누며 가족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둘째 아들은 때때로 아버지보다 더욱 순수한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하며, 아버지가 현실과 환상 사이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로도 기능합니다. 그의 행동과 반응은 영화의 감정 축을 보완하며, 관객이 아버지의 내면적 변화와 가족의 유대를 함께 느끼도록 돕습니다.
까마귀 (Crow) - 에릭 람파트 (Eric Lampaert)
슬픔의 상징적 표현이자 초현실적 존재로 등장하는 ‘까마귀(Crow)’는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까마귀는 단순한 상상 속 존재가 아니라 아버지의 슬픔을 구체화한 존재로, 때로는 위협적이거나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 주인공을 괴롭히기도 하고, 때로는 감정적 진실과 화해를 향한 길을 상징적으로 안내하기도 합니다.
아만다 (Amanda) - 비네트 로빈슨 (Vinette Robinson)
그녀는 가족이나 사회적 관계를 상징하는 존재로, 아버지가 현실과 외부 세계 사이에서 발을 디디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때로는 아버지에게 조언이나 위로를 건네며, 그가 현실적 삶을 다시 받아들이도록 유도합니다. 그녀의 존재는 영화 전체적 분위기와는 다소 차별되는 온화함과 현실감을 부여하며 슬픔의 극복과 인간적 소통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합니다.
폴 (Paul) - 샘 스프루얼 (Sam Spruell)
폴은 아버지가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인물로서, 슬픔에 압도된 한 개인을 둘러싼 현실적 문제들을 반영합니다. 가족 내적인 감정 흐름과는 다른 방향에서 이야기의 균형을 잡아 주며, 관객이 아버지라는 인물을 보다 다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총평
영화 《더 씽 위드 페더스》는 맥스 포터(Max Porter)의 소설 Grief Is the Thing with Feathers를 바탕으로 한 2025년 작 드라마 영화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한 가정을 무너뜨린 깊은 상실과 슬픔의 감정을 연기한 작품입니다.
감독 딜런 서던(Dylan Southern)은 이 작품을 통해 애도(Grief)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려는 독특한 시도를 했으며, 소설 특유의 추상적 슬픔을 현실적 화면 언어로 번역해 보려 했다는 점에서 도전적인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먼저 가장 많이 언급되는 특징은 베네딕트 컴버배치(Benedict Cumberbatch)의 연기력입니다. 그는 아내를 잃은 뒤 두 아들과 함께 슬픔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아버지’ 캐릭터를 연기하며,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붕괴되는 정서적 균형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의 표정, 행동, 감정의 급격한 변화는 극 전체가 전통적 서사나 단순 감정 묘사에 치우치지 않고, 관객이 슬픔의 내부로 들어가도록 만드는 감정적 촉매 역할을 합니다. 이 점은 관객 리뷰에서도 “슬픔과 절망을 몸으로 표현하는 연기가 인상적이었다”는 평이 나오며 긍정적으로 평가된 부분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대체로 비평가로부터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메타크리틱(Metacritic) 기준 총평점 48/100으로 “Mixed or Average” 평가를 받았고, **로튼토마토 토마토미터 약 46%**로 비교적 낮은 비평가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비평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점은 영화가 슬픔의 상징으로 선택한 초현실적 존재 ‘까마귀(Crow)’의 구현 방식이 작품 전체의 톤과 감정적 중심을 흐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몇몇 평론에서는 “까마귀가 상징적 시도는 인상적이지만, 영화가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과하거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특히 이 존재가 공포적 요소와 드라마적 요소 사이에서 애매한 위치에 머물러서, 영화가 감정적 긴장과 심리적 통찰을 동시에 확보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또 다른 비판 점은 영화가 감정적 깊이를 충분히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관객은 아버지의 슬픔을 대체로 이해하지만, 이를 다층적이고 세밀하게 파고들기보다는 시각적 은유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는 평가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스타일은 원작 소설 특유의 서정적이고 시적 감성을 화면으로 그대로 옮기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초현실적 장치가 오히려 이야기의 중심 감정을 희석시키고 드라마적 여운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합니다.
반면, 일반 관객 평은 상당히 다른 측면을 보여 줍니다. 사용자 평점은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로튼토마토 사용자 평점 약 7.0)을 기록하고 있으며, 일부 관객들은 영화가 “슬픔과 상실의 경험을 현실적으로 느끼게 한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관객 리뷰에서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가 파괴적이면서도 공감 가는 슬픔을 담아냈다”, “까마귀와 같은 초현실적 요소는 슬픔의 복잡성을 시각화하려는 용감한 시도다”라는 의견도 나타납니다.
이는 비평가와 일반 관객 사이의 해석 차이가 존재함을 보여 줍니다. 일부 관객은 영화가 어두운 톤과 리듬, 시각적 상징을 통해 직접적으로 슬픔이라는 감정의 무게를 체감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합니다.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발견했을 때, 그 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각적 표현과 분위기 구성, 그리고 가족의 일상과 슬픔의 연속성을 빛과 그림자, 촬영 구도로 표현한 점입니다. 일부 비평은 영화가 상실을 하나의 존재적 상태로 구현하려는 시도 자체는 높게 평가하지만, 그것이 스크린에서 완결성 있게 전달되지 못한 면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호러적 요소와 드라마적 요소의 결합에 대한 평가도 엇갈립니다. 일부 평론은 영화가 “완전히 공포 영화도 아니고 충분히 심리 드라마로서 깊이를 확보하지도 못했다”고 평가하는 반면, 다른 시각에서는 “초현실적 존재는 슬픔을 형상화한 진부하지 않은 은유”라며 작품의 실험성을 인정하기도 합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더 씽 위드 페더스》는 ‘슬픔’이라는 보편적 경험을 영화적으로 탐구하려는 독특한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나 비극적 멜로가 아니라 슬픔을 외부화하고, 이를 이미지로 구현하려는 과감하고 실험적인 접근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관객 일부에게는 깊은 감정적 공감을 안겨 주었지만, 비평적 관점에서는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뛰어난 연기와 독창적인 시각 표현, ‘슬픔’을 환상적 존재로 시각화하려는 의지로 인해 독창적인 영화적 시선을 보여 주지만, 극적 설득력과 감정적 깊이, 드라마적 결속력의 일관성에서는 아쉬움을 남긴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일부에게는 심리적·감정적 경험으로서의 영화, 다른 일부에게는 실험적이지만 완성도에서는 논쟁적인 영화로 기억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