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요약
영화 《대외비》는 1992년 부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정치 느와르 드라마로, 권력을 쟁취하려는 정치인의 야망과 그를 둘러싼 음모, 그리고 부패한 정치판의 민낯을 그린다. 영화는 만년 국회의원 후보였던 ‘전해웅’이 지역 정치 실세에게 배신당하면서 시작된다.
전해웅(조진웅)은 오랫동안 지역 기반을 다져온 인물이지만, 공천권을 가진 정치 실세 권순태(이성민)에게 낙마당하며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권순태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다른 인물을 공천하며 해웅을 철저히 배제하고, 해웅은 이 결정에 분노하지만 힘없는 현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이때, 해웅은 부산 해운대 재개발 계획이 담긴 극비 문서, 즉 ‘대외비’를 우연히 손에 넣는다.
이 문서에는 권순태가 은밀히 추진하는 대형 재개발 사업과 그로 인해 얻게 될 막대한 이권이 상세히 담겨 있다. 전해웅은 이 정보를 무기로 삼아 권순태에게 반격을 가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정당의 지원 없이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사실상 무모한 일. 결국 그는 조직폭력배 김필도(김무열)와 손을 잡게 된다. 필도는 재개발 정보를 활용해 이득을 보려는 욕심으로 해웅에게 자금과 인력을 지원하며, 정치판에 뛰어든다.
해웅은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사람들의 표심을 얻어가며 점점 세력을 확장해 나간다. 주민들과의 신뢰, 지역 기반을 다시 다지며 승기를 잡는 듯했지만, 권순태는 조용히 반격을 준비한다. 그는 선거 조작, 언론 플레이 등 온갖 불법과 음모를 동원해 해웅을 다시 낙마시키려 한다.
이처럼 영화는 한 정치인의 재기 시도와, 그가 맞서야 할 거대한 권력의 벽, 그리고 정치와 조폭이 얽힌 치열한 생존의 현장을 생생히 그려낸다.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벌어지는 권력 쟁탈전은 진실과 정의, 욕망이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며, 관객에게 씁쓸한 질문을 남긴다.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가, 권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하는 영화다.
주요 인물 소개
전해웅 (조진웅)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로, 부산 지역에서 오랫동안 정치 활동을 해온 만년 국회의원 후보이다. 정의롭고 원칙적인 면모를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권이라는 냉혹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점차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는 처음엔 지역 개발과 주민의 삶을 우선시하는 이상적인 정치인이었으나, 권순태의 배신과 공천 탈락이라는 위기를 맞이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대외비' 문서를 입수하면서부터 그는 점점 더 권력의 중심으로 향하게 되고,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조폭과도 손을 잡게 된다. 그 변화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권순태 (이성민)
부산 정계를 주무르는 절대 권력자이자, 지역 조직과의 끈끈한 연결고리를 통해 선거판을 좌우하는 인물이다. 표면적으로는 인자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유지하지만, 실제로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이자 기회주의자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과감한 결단도 서슴지 않는다. 전해웅을 공천에서 배제하고, 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인물을 앞세우는 동시에, 음지에서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선거를 조작한다. 이성민은 이 인물을 통해 권력의 속성과 그 뒤편의 음모를 현실감 있게 표현한다.
김필도 (김무열)
지역 폭력조직의 핵심 인물로, 전해웅과의 거래를 통해 정치권에 개입하는 역할을 맡는다. 단순한 조폭 캐릭터가 아닌, 경제적 이익과 현실적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사업가적 마인드를 지닌 인물이다. ‘대외비’ 문서를 통해 재개발 이권을 얻으려는 속셈으로 해웅을 도우며 선거전에 뛰어들지만, 그의 본심은 언제든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위험 요소이기도 하다. 김무열은 차가운 이성과 폭력성이 공존하는 필도를 섬세하게 표현하며, 영화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한다.
총평
영화 《대외비》(2023)는 1990년대 초 부산 정가의 음모와 부패,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서로 얽히고 충돌하는지를 치밀하게 풀어낸 정치 누아르 영화다. 이원태 감독은 전작에서 보여준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한 통찰을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며, 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비리와 인간 군상의 탐욕을 현실감 있게 담아냈다.
특히 조진웅, 이성민, 김무열 세 배우의 긴장감 넘치는 연기 대결은 이 영화의 핵심 강점이다. 캐릭터 각자의 명확한 동기와 내면의 갈등이 설득력 있게 그려지며, 정치와 폭력, 배신이라는 익숙한 소재들이 진부하지 않게 전개된다.
영화의 배경이 된 1992년 부산은 단순한 시대 설정을 넘어서, 당시 한국 사회의 정치적 풍토와 지역 기반 정치의 현실을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 개발 이권을 둘러싼 이해관계,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협잡과 음모는 한국 현대 정치사의 단면을 보는 듯한 리얼리티를 제공하며 관객에게 강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90년대 대중음악과 공간 디자인이 더해져, 영화 전체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풍부함까지 부여한다.
다만 서사의 전개가 일부 예측 가능한 구조를 따르고 있다는 점,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 극적인 반전이나 감정적 정리가 다소 미진하다는 점은 이 영화의 아쉬운 부분이다. 특정 인물들의 서사가 중반 이후 급하게 마무리되는 감도 있으며, 상징적으로 처리한 몇몇 장면은 관객에 따라 해석이 갈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외비》는 정치적 이면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한 시대의 어두운 초상을 스크린에 진지하게 담아낸 수작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이는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권력 구조에 대한 성찰을 담은 웰메이드 정치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