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요약
영화는 1838년 독일의 조용한 항구 도시 비스부르크에서 시작됩니다. 엘렌 허터(릴리 로즈 뎁)는 어딘가 알 수 없는 불안과 외로움으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존재감을 상실한 듯한 삶을 이어왔습니다.
어린 시절, 위안을 갈망하던 그녀는 마음속으로 “보호의 천사 혹은 어떤 정신적 존재여, 내게 와달라”고 소원을 빌었고, 응답하듯 나타난 존재는 그녀에게 영원한 헌신을 요구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엘렌은 부동산 중개인인 남편 토마스 허터(니콜라스 홀트)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합니다. 회색빛 예지몽 속에서 그녀는 결혼 후 “죽음과 결혼한다”는 불길한 꿈을 꾸며 남편에게 우려를 표하지만, 토마스는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스스로 오슬로프 부동산 매매를 위해 트란실바니아로 향합니다.
토마스가 떠난 후, 엘렌은 친구인 프리드리히(아론 테일러 존슨)와 안나(엠마 코린) 하딩부부와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지내지만, 점차 수면장애와 경련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일상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로 몰려갑니다.
한편 토마스는 트란실바니아의 깊은 산길을 헤치고, 기이한 분위기의 마을에 도착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오를록을 두려워하며 경계하지만, 토마스는 이미 오를록의 그루네발트 저택 매매를 위한 계약서 서명을 종용받습니다. 식사 자리에서는 자신의 상처에서 피를 흘리는 토마스를 오를록이 응시하고, 그 후 토마스는 의식이 흐려진 채 이상한 상처를 발견하며 깨어납니다.
토마스는 가까스로 성을 탈출하고 비스부르크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돌아온 그는 도시가 역병(흑사병)에 휩싸였다는 사실과 함께, 엘렌 자신의 상태도 급격히 악화된 것을 목격합니다. 의사 지버스(랄프 이네슨)와 그의 스승인 오컬트 전문가 폰 프란츠 교수(윌렘 대포)는 엘렌이 '노스페라투(vampiric possession)'에 걸렸음을 인식합니다.
오를록은 자신이 보낸 문서를 통해 토마스와 엘렌의 결혼을 해지하게 했으며, 이제 엘렌은 오를록만의 것이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3일 안에 엘렌이 자발적으로 자신에게 넘어오지 않으면, 토마스와 도시 전체가 파멸할 것”이라 위협합니다.
고통에 짓눌린 엘렌은 결국 자신만이 오를록을 막을 수 있다는 계시를 받아,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녀는 토마스와 시버스, 폰 프란츠를 속이기 위해 거짓 행동을 보이며, 스스로 남겨져 오를록 앞에 혼자 남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결말에서, 엘렌은 온전히 오를록에게 자신을 내어주며 그가 먹잇감에 집중하도록 유도합니다. 오를록이 그녀에게 집중해 있는 사이 동이 트는 햇빛이 방으로 스며들어, 오를록은 빛에 의해 산화되어 재가 됩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희생당한 채 토마스의 품에서 숨을 거둡니다.
도시는 엘렌의 희생 덕분에 노스페라투의 저주에서 해방되며, 토마스는 엘렌의 무덤 앞에서 슬픔에 잠긴 채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주요 인물 소개
엘렌 허터 (Ellen Hutter) – 릴리 로즈 뎁 (Lily Rose Depp)
엘렌은 남편 토마스와 독일의 작은 항구 도시 비스부르크에 거주 중인 여성입니다. 어린 시절 외로움에 시달리던 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보호의 천사’를 간절히 원했고, 그 응답으로 노스페라투(오를록)의 존재가 그녀의 삶에 그림자처럼 드리웠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집착하게 되고, 엘렌은 그 영향으로 발작과 불안, 초자연적인 환영에 시달리며 고통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작품에서 엘렌은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종말을 극복하려는 중심인물로서, 뎁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섬세하게 연기해 냅니다.
토마스 허터 (Thomas Hutter) – 니콜라스 홀트 (Nicholas Hoult)
비스부르크의 부동산 중개인으로 야망을 품은 젊은이입니다. 상사의 지시에 따라 트란실바니아로 향해 노스페라투에게 성을 판매하는 계약을 처리하려 하지만, 그곳에서 벌어진 공포에 휘말립니다. 귀환 후 아내 엘렌의 이상증세에 직면하며 원형(原型)을 깨달아가죠. 홀트는 토마스를 통해 관객이 서서히 공포에 눈뜨도록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카운트 오를록 / 노스페라투 (Count Orlok / Nosferatu) – 빌 스카스가드 (Bill Skarsgard)
에거스 감독의 해석 속에서 오를록은 단순한 흡혈귀를 넘어 트란실바니아 태생의 초자연적 귀족이며, 태고의 저주와도 얽힌 ‘솔로모나르(Solomonar)’ 출신으로 설정됩니다. 엘렌과의 사이에 형성된 정신적 유대와 집착은 그의 존재를 더욱 끔찍하게 만듭니다. 스카스가드는 목소리를 낮추기 위한 훈련과 독창적 미장센을 통해 오를록 특유의 불길함과 동시에 매혹을 구현했습니다.
프리드리히 하딩 (Friedrich Harding) – 아론 테일러 존슨 (Aaron Taylor Johnson)
토마스의 친구이자 부유한 조선업자입니다. 토마스를 떠난 사이 엘렌을 돌보는 가족으로 등장하며, 오를록의 위협이 닥치며 가족과의 관계가 긴장감 속에서 파고듭니다. 원작에서는 작은 역할이었지만, 에거스는 이 인물에 감정선을 부여하며 인간적 고뇌를 부각시킵니다.
안나 하딩 (Anna Harding) – 엠마 코린 (Emma Corrin)
프리드리히의 아내이자 엘렌의 가장 가까운 친구입니다. 임신 중이며 두 딸의 어머니로, 엘렌의 고통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혹시 모를 위험에 맞서 함께하려 합니다. 에거스는 이 캐릭터를 단순한 조연 이상의 정서적 중심으로 확장했습니다.
프로페서 알빈 에베르하르트 폰 프란츠 (Prof. Albin Eberhart von Franz) – 윌렘 대포 (Willem Dafoe)
알고 보니 엘렌의 상태를 이해하는 몇 안 되는 인물로, 오컬트와 연금술, 초자연학을 탐구하는 현자입니다. 에거스 작품에서 과학과 미신 사이의 경계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그는 독창적인 관점으로 공포의 본질에 접근합니다.
닥터 빌헬름 지버스 (Dr. Wilhelm Sievers) – 랄프 이네슨 (Ralph Ineson)
현대 의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처음에는 엘렌의 신경학적/정신적 이상을 치료하려 합니다. 그러나 점차 비현실적 현실에 직면하며 폰 프란츠와 협력하게 되죠. 이네슨 역시 에거스의 ‘의심많은 동료(Watson)’로 기능합니다.
헤어 노크 (Herr Knock) – 사이먼 맥버니 (Simon McBurney)
토마스의 상사이자, 노스페라투의 속셈에 긴밀히 연계된 인물입니다. 그는 비밀스러운 충성심을 품고 토마스를 트란실바니아로 유인하는 중개자이기도 하죠. 외견상 보이는 온화함 뒤에 숨겨진 광기와 의도가 엿보입니다.
총평
영화 《노스페라투》는 로버트 에거스 감독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고딕 호러의 결정체로, 영화 팬들과 평단 모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작품은 단순히 전설적인 흡혈귀의 이야기를 다시 그려낸 리메이크에 머무르지 않는다.
1922년 무성영화의 전설인 F.W. 무르나우의 원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동시에 에거스 특유의 역사적 고증과 시각적 리얼리즘을 결합해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작품으로 완성해 냈다.
가장 먼저 주목할 부분은 영화의 압도적인 비주얼과 분위기다. 촬영감독 자린 블래슈케는 빛과 어둠을 교차시키며, 촛불이 일렁이는 방 안이나 달빛이 스며든 폐허 속에서 초자연적 존재가 서서히 드러나는 장면들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카메라는 인물을 응시하는 듯 다가갔다가 이내 곤두박질치듯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관객을 불안과 공포에 몰아넣는다. 이러한 시각적 접근은 단순히 무서움을 주는 차원을 넘어,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 무력하게 놓인 듯한 존재론적 공포를 선사한다.
영화의 서사적 구조는 전통적인 고딕 호러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현대적 의미를 담아낸다. 단순히 괴물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괴물이 상징하는 억압, 욕망, 권력 관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특히 오를록과 엘렌의 관계는 단순한 포식자와 희생자의 구도가 아니라, 사랑과 집착, 욕망과 거부 사이에서 긴장하는 권력의 역학으로 그려진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단순한 호러를 넘어,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성찰의 장으로 확장된다.
물론 전개가 느리고 무겁다는 점은 일부 관객에게 아쉬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전통적인 할리우드식 호러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장황하고 암울한 분위기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에거스는 속도보다 몰입과 체험을 중시한다. 그는 관객이 고딕 세계의 공기와 냄새, 심지어는 돌 틈에 낀 곰팡이까지 체감하게 만들고자 한다.
비평가들의 반응도 흥미롭다. 일부는 지나치게 예술적이고 난해하다고 혹평했지만, 대다수는 “현대 고딕 호러의 걸작”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영화는 2024년 말부터 평론가 협회에서 촬영·미술 부문 상을 휩쓸었으며, 흥행에서도 1억 달러를 훌쩍 넘기며 Focus Features 역사상 손꼽히는 성공작이 되었다. 이는 공포 영화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예술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성취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결국 《노스페라투》는 단순히 흡혈귀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힘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 욕망과 도덕 사이의 갈등, 사랑과 파멸의 교차점에 선 존재의 슬픔을 담은 비극적인 고딕 서사다.
에거스는 이 고전적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소환하며, 관객들에게 단순한 공포 이상의 체험을 선사했다. 공포를 통해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작품은 반드시 경험해야 할 현대 호러의 정수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