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요약
이야기는 작고 고요한 뉴잉글랜드 교회 공동체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이 마을에는 ‘영원한 불굴의 성모 성당(Our Lady of Perpetual Fortitude)’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다양한 배경과 성격을 지닌 인물들이 모여 신앙생활을 한다. 교회는 본당 신부 제퍼슨 윅스(조시 브롤린)의 강력한 카리스마 아래 운영되지만, 그만큼 내적 갈등도 깊다.
성당에는 교인들이 각자의 이유로 모여 있는데, 교회를 오랫동안 지원해 온 성실한 관리인 마르타 델라크루아(글렌 클로즈), 단단하지만 묵묵한 정원사 샘슨 홀트(토머스 헤이든 처치), 법적 마찰이 잦은 변호사 베라 드레이븐(케리 워싱턴)과 그녀의 야망 있는 아들 사이 드레이븐(대릴 맥코맥), 지역 의사 낸 셰이프(제레미 레너), 은둔 작가 리 로스(앤드류 스콧), 그리고 소프라노 출신의 첼리스트 시몬 비반(케일리 스페이니) 등 다양한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지극히 평범하지만 동시에 각자 비밀과 갈등을 품고 있다.
한편, 젊은 신부 주드 듀플렌티시(조시 오코너)가 이 성당에 부임한다. 과거 권투 선수로 활동하다 안타까운 사건으로 링을 떠난 그는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신부가 되었으며, 윅스의 어깨 아래서 공동체를 돕고자 한다. 듀플렌티시는 신앙심 깊고 동정심 많은 성직자이지만, 공동체 속에 숨겨진 불신과 복잡한 감정을 마주하면서 많은 부담을 느낀다.
사건은 윅스 신부가 미사 도중 이상 행동을 보이다가 갑자기 사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당의 봉인된 방 안에서 죽은 채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방은 내부에서 문을 잠근 채였고, 누구도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는 구조였다.
칼에 찔린 듯한 치명상과 함께 발견된 윅스의 시신은 모두에게 충격을 준다. 이 ‘불가능 범죄’의 성격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고, 지역 경찰서장 제럴딘 스콧(밀라 쿠니스)은 사건 해결을 위해 명탐정 블랑을 초청한다.
블랑은 예리한 관찰력과 독특한 추리 방식으로 사건을 탐색하며, 처음부터 듀플렌티시를 유력한 용의자로 본다. 그는 듀플렌티시가 윅스와 종종 의견 충돌을 빚었다는 사실을 주시하고, 듀플렌티시의 내적 갈등이 사건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의심한다. 그러나 블랑은 단순한 선입견에 머물지 않고 교인들 각자의 진술과 행동을 면밀히 분석하며 사건의 진실에 접근한다.
수사는 점차 협력과 배신, 위선과 진심 사이의 미묘한 경계로 확장된다. 블랑은 윅스가 사망 전에 누군가와 비밀리에 접촉했음을 포착하고, 교회 재정과 연관된 숨겨진 보물의 존재까지 의심한다.
교회 곳곳에 숨겨진 단서와 모순된 진술은 모두를 의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특히 마르타는 윅스의 혈통과 관련된 비밀 장소에서 숨겨진 다이아몬드 보석을 찾았으며, 이 보석이 교회의 미래를 바꿀 중요한 열쇠처럼 여겨진다.
진실이 드러날수록 사건은 단순한 살인이 아닌 교회 내부의 복잡한 음모와 인간 욕망의 교차점임이 분명해진다. 실제 살해는 낸 셰이프가 윅스의 음료에 진정제를 숨겨 그의 경계를 낮춘 뒤 순간적으로 칼로 찔러 죽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단지 살인만이 아니었다. 셰이프와 마르타는 윅스를 ‘기적적인 부활’로 조작해 대중의 관심을 끌려했으며, 이를 통해 교회의 명성과 재정을 극대화하려는 욕망을 품고 있었다.
계획은 점차 틀어지며 셰이프와 마르타 사이의 갈등이 폭발한다. 셰이프는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더 잔인한 선택을 하고, 사건은 더욱 커진다. 마르타는 셰이프를 독살시키고 스스로도 독을 마시며 진실을 자백한다. 그녀는 죽음 직전 교회에 숨겨둔 다이아몬드를 드러내며 모든 음모를 털어놓는다. 블랑은 이를 통해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교회 내부의 위선을 폭로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희망과 재건의 메시지를 담는다. 듀플렌티시는 교회를 재정비하고 존속시키기로 결심한다. 그는 마르타가 남긴 다이아몬드를 십자상 안에 숨겨 상징적으로 보존하며, 새로운 시작을 암시한다. 이 결말은 단순한 범죄 해결이 아니라 믿음과 구원,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로 확장된다.
주요 인물 소개
브누아 블랑 (Benoit Blanc) –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시리즈의 중심축이 되는 명탐정 브누아 블랑은 이번 작품에서도 독특한 남부 억양과 유머, 그리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괴짜에 가까운 인상을 주지만, 인간의 심리와 거짓의 구조를 꿰뚫어 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다. 이번 사건에서 블랑은 종교 공동체라는 폐쇄적 공간 안에서 벌어진 ‘불가능 범죄’를 마주하며, 단순한 살인 추리를 넘어 신앙과 위선, 도덕과 욕망의 충돌을 분석하게 된다. 이전 시리즈보다 한층 어둡고 내면적인 태도를 보이며, “진실은 항상 가장 단순한 곳에 숨어 있다”는 그의 신념이 극의 중심 주제로 작동한다.
주드 듀플렌티시 (Jude Duplentis) – 조시 오코너(Josh O’Connor)
젊은 신부 주드 듀플렌티시는 영화의 정서적 핵심 인물이다. 그는 과거 권투 선수였으나 비극적인 사고 이후 신앙에 귀의해 성직자의 길을 택한 인물로, 죄책감과 구원의식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새로 부임한 교회에서 그는 공동체를 진심으로 위하려 하지만, 오래된 권력 구조와 숨겨진 비밀 속에서 점차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의 순수함과 불안정한 내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를 신뢰해야 할지 의심하게 만들며, 이야기 전개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제퍼슨 윅스 몬시뇰 (Monsignor Jefferson Wicks) – 조시 브롤린(Josh Brolin)
교회의 실질적인 지도자이자 사건의 피해자인 제퍼슨 윅스는 강한 카리스마와 보수적인 신념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공동체를 단단히 결속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유지하려는 인물로 묘사된다. 생전 그는 신앙을 명분으로 여러 갈등을 억눌러 왔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원한을 남겼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교회 내부에 누적된 긴장과 위선이 폭발한 결과처럼 그려진다.
마르타 델라크루아 (Marta Delacroix) – 글렌 클로즈(Glenn Close)
교회의 오랜 관리인이자 재정과 기록을 책임져 온 인물로, 겉보기에는 헌신적인 신자이지만 누구보다 많은 비밀을 쥐고 있다. 마르타는 교회의 역사와 재산, 그리고 윅스의 과거를 모두 알고 있는 인물로, 사건이 진행될수록 그녀의 존재감은 점점 커진다. 글렌 클로즈 특유의 절제된 연기는 이 인물을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이야기의 방향을 좌우하는 핵심 인물로 만든다.
제럴딘 스콧 (Geraldine Scott) – 밀라 쿠니스(Mila Kunis)
지역 경찰서장인 제럴딘 스콧은 현실적이고 실무적인 인물로, 브누아 블랑과 미묘한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처음에는 외부에서 온 사설탐정을 경계하지만, 점차 그의 추리 능력을 인정하며 협력하게 된다. 그녀는 공동체 내부의 정치적 압력과 진실 사이에서 갈등하며, 사건이 단순한 살인이 아님을 깨닫는 인물이다.
베라 드레이븐 (Vera Drayven) – 케리 워싱턴(Kerry Washington)
냉철하고 지적인 변호사로, 교회와 법적·재정적으로 얽혀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모든 상황을 계약과 책임의 문제로 바라보며, 감정보다 논리를 우선시한다. 그러나 사건이 진행되며 그녀 역시 개인적인 이해관계와 과거의 선택에서 자유롭지 않음이 드러난다.
사이 드레이븐 (Cy Drayven) – 대릴 맥코맥(Daryl McCormack)
베라의 아들이자 정치적 야망을 품은 인물로, 종교와 권력을 연결해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 한다. 그는 겉으로는 신앙심 깊은 청년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계산적이며 상황을 이용하는 데 능숙하다. 그의 존재는 영화의 사회적 풍자 요소를 강화한다.
낸 셰이프 (Nan Shafe) – 제레미 레너(Jeremy Renner)
지역 의사로서 교인들의 신뢰를 받는 인물이지만, 인간의 생과 사를 누구보다 냉정하게 바라본다. 그는 사건의 의학적 단서를 제공하는 동시에, 중요한 전환점에서 의심을 받는 인물이다. 그의 차분한 태도 뒤에는 통제 욕구와 도덕적 회색지대가 숨어 있다.
리 로스 (Lee Ross) – 앤드류 스콧(Andrew Scott)
은둔한 작가이자 교회의 후원자 중 한 명으로, 날카로운 관찰력과 냉소적인 시선을 지녔다. 그는 공동체를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인물로, 블랑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는 동시에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한다.
시몬 비반 (Simone Vivant) – 케일리 스페이니(Cailee Spaeny)
음악을 담당하는 젊은 예술가로, 공동체 내에서 가장 순수한 시선을 지닌 인물이다. 그녀는 사건을 통해 어른들의 위선과 폭력을 목격하며 성장과 상실을 동시에 경험한다.
총평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은 라이언 존슨 감독이 다시 한번 ‘현대식 고전 미스터리’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한 작품이다. 전작들이 부유한 가문과 테크 엘리트라는 사회적 풍자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이번 영화는 종교 공동체와 신앙, 도덕성이라는 보다 근원적이고 민감한 주제를 중심에 놓는다.
그 결과 이 작품은 시리즈 중 가장 어둡고, 가장 내면적인 정서를 띤 영화로 평가된다.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서사 구조의 정교함이다. 영화는 ‘봉인된 공간에서 벌어진 살인’이라는 고전 추리물의 전형적인 설정을 취하지만, 이를 단순한 퍼즐 맞추기에 그치지 않고 인간 심리의 복잡성으로 확장한다.
관객은 초반부터 누가 범인인지보다, 누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된다. 이는 라이언 존슨 특유의 서사 전략으로, 진실을 단번에 드러내기보다 거짓과 자기합리화가 쌓여 만들어진 구조를 해체하는 방식이다.
브누아 블랑이라는 캐릭터 역시 이전보다 한층 성숙하고 차분해졌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과장된 유머와 괴짜적 면모를 절제하고, 관찰자이자 철학자에 가까운 탐정의 얼굴을 보여준다.
블랑은 이번 영화에서 단순히 범인을 지목하는 인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하나의 ‘피의자’로 바라보는 시선을 대표한다. 이는 탐정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사회와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려는 감독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연기 앙상블 또한 호평의 핵심 요소다. 조시 브롤린, 조시 오코너, 글렌 클로즈, 케리 워싱턴 등 베테랑과 신예 배우들이 조화를 이루며, 각 인물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특히 글렌 클로즈와 조시 오코너는 신앙과 권력, 죄책감이라는 테마를 인물의 표정과 태도만으로 전달하며 극의 무게감을 높인다. 이들의 연기는 영화가 단순한 오락물에 머물지 않도록 만드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연출 면에서는 시리즈 중 가장 절제된 스타일이 돋보인다. 화려했던 〈글래스 어니언〉과 달리, 이번 작품은 차분한 색감과 제한된 공간 활용을 통해 폐쇄성과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교회라는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위선과 믿음이 공존하는 상징적 무대로 기능한다. 카메라는 인물들의 거리를 세밀하게 포착하며, 침묵과 시선의 교차를 통해 말보다 많은 것을 전달한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호불호를 낳을 요소이기도 하다. 일부 관객에게는 전작들에 비해 유머와 속도감이 줄어들었다고 느껴질 수 있으며, 종교적 상징과 윤리적 질문이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점이 다소 무겁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의도된 선택으로, 영화가 지향하는 방향성이 단순한 쾌감보다는 사유와 여운에 있음을 보여준다.
비평적으로 볼 때, 시리즈의 공식에 안주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를 갱신하려는 작품이다. 라이언 존슨은 “나이브스 아웃은 장르가 아니라 질문”이라는 태도를 유지하며, 매 작품마다 다른 사회적 공간을 탐색한다. 이번 영화는 그 질문을 인간의 믿음과 도덕성이라는 가장 불편한 영역으로 밀어붙인다.
종합하면,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은 화려한 반전과 기지 넘치는 대사보다는 정교한 구조와 주제의식으로 승부하는 작품이다. 시리즈 팬이라면 이전 작품과의 차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것이며, 미스터리 장르를 넘어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특히 깊은 인상을 남길 영화다.
이는 ‘속편’이 아니라, 브누아 블랑이라는 캐릭터와 나이브스 아웃 세계관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