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요약
1966년, 멕시코의 유능한 여성 물리학자 노라 에스키벨(Nora Esquivel)은 남편 엑토르(Héctor)와 함께 획기적인 시간여행 장치를 개발 중입니다. 하지만 연구 과정은 순탄치 않습니다. 노라는 자신의 아이디어와 실력을 발휘하지만, 대학의 학장과 동료들은 여전히 그녀를 ‘엑토르의 조수’로만 인식합니다.
심지어 학장은 그녀의 과학적 업적보다 요리 솜씨에만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에 노라는 억울함을 느끼고, 엑토르는 이러한 현실에 무심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 장면은 현실 속 여성 과학자들이 겪은 차별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사례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은 시간여행 장치의 오작동으로 인해 뜻밖에도 2025년의 멕시코시티로 이동하게 됩니다. 과거의 친구이자 노라의 제자였던 훌리아(Julia)는 이제 대학 학장으로 있어, 두 사람을 따뜻하게 맞이하며 노라의 과학자로서의 가치를 인정해줍니다. 노라와 엑토르는 스마트폰, 인터넷, 성평등 의식 등 기술·사회적 변화를 접하고 충격받지만, 동시에 적응해 나갑니다.
노라는 60년 동안 억눌렸던 자신을 재발견합니다. 과학자로서,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더 이상 은퇴하지 않고 자신의 역량과 꿈을 펼칠 기회를 얻습니다. 반면 엑토르는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에 혼란을 느낍니다. 과거에 비해 달라진 사회 구조에서 그는 갑자기 주변으로 밀려난 듯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엑토르는 과거로 돌아가 삶을 복구하고 싶어 하지만, 자신감과 중심을 잃은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며 내면적 갈등에 빠집니다.
이 과정은 마치 영화 ‘바비’에서 켄이 주체성을 잃고 혼란을 겪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노라가 점차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는 여정입니다. 노라는 엑토르와 함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지만, 이 시간을 통해 깨달은 ‘지금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영화 내내 과학적 설정 타키온, 웜홀 등은 주된 초점이 아닙니다. 대신 “현재를 충실히 사는 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노라의 손녀이자 젊은 물리학도 알론드라(Alondra)의 영향은 지대합니다. 알론드라는 현대 사회의 다양성과 주체성, 성적 표현의 자유에 눈뜨게 해주고, 심지어 두 사람을 성인용품 가게로 이끄는 등 문화적 경계를 허뭅니다.
결국 노라와 엑토르는 불가피한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과거로 돌아가던가, 아니면 미래에 남아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것인가. 노라는 과거에 안주하기보다 미래, 즉 ‘지금’을 선택합니다. 그녀는 진정한 과학자이자 여성으로서, 자신만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용기를 내는 것입니다. 반면 엑토르는 여전히 과거를 향한 미련과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며,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를 재정립합니다.
주요 인물 소개
노라 세르반테스 박사 (Nora Cervantes) - 루세로 (Lucero)
1966년 당시 국립 멕시코대학교(UNAM) 물리학 교수이자 시간여행 장치를 개발 중인 과학자. 뛰어난 지성과 연구력을 갖추었지만, 당시 남성 중심의 학계와 동료들로부터 ‘엑토르 교수의 조수’로 취급받으며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영화 초반엔 학장과 일부 교수들로부터 요리 솜씨만 칭찬받는 순간도 있어 여성 과학자가 겪은 차별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고의가 아닌 시간여행으로 2025년으로 오게 되면서 그녀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뛰어난 연구 성과와 리더십을 인정받아 현대 과학계의 찬사를 받으며 완전히 ‘전성기’로 되돌아갑니다. 손녀뻘 학생 알론드라와의 교류, 사회적 지위의 변화, 그리고 성평등한 환경 속에서 노라는 진정한 자신을 재발견하고 성장하게 됩니다.
엑토르 에스키벨 박사 (Héctor Esquivel) - 베니 이바라 (Benny Ibarra)
노라의 남편이자 공동연구자. 자신이 이룬 업적에 대해 의심 없이 받아들이며, 아내의 과학적 기여를 묵살한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2025년의 사회 구조와 평등 담론에 적응하지 못하고, 새로운 세계에서 점점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노라가 점차 중심인물로 부상하자 위기의식을 느끼며, 갈등을 증폭시킨다. 고루한 남성 중심주의를 상징하는 인물로, 시간 여행이라는 설정이 그의 사고방식의 한계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결국 그는 과거로 돌아가려 하지만, 노라와의 가치 충돌 속에 단절을 맞는다.
훌리아 (Julia) - 오펠리아 메디나 (Ofelia Medina) (2025 버전) / 카롤리나 빌라밀 (Carolina Villamil) (1966 버전)
노라의 옛 제자이자 2025년 UNAM 총장. 젊은 시절 노라의 지도 아래 과학의 길로 들어섰으며, 현재는 여성과학자 권익 향상에 앞장서는 리더로 성장했다. 노라의 귀환을 누구보다 반기며, 그녀를 학계에 복귀시키려 한다. 과거의 스승을 동시대적 동료로 받아들이는 인물로, 세대 간의 연대를 상징하며 영화 속 여성서사에서 중요한 축을 이룬다. 자신의 위치와 영향력을 통해 노라가 다시 한번 자신의 업적을 조명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는 조력자이자 감정적 연결점이다.
알론드라 (Alondra) - 레나타 바카 (Renata Vaca)
2025년 UNAM의 젊은 여성 과학도로, 자유롭고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감각이 매우 현대적이며, 노라가 처음 경험하는 ‘지금 세대’의 가치관을 대표한다.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가까워지며, 알론드라는 노라에게 과학 외적인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녀의 존재는 노라가 자기 내면의 감정을 다시 마주하고, 억눌렸던 감성적·성적 자아를 회복하는 중요한 열쇠로 작용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노라가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로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드. 카라스코 (Dr. Carrasco) - Enrique Singer
1966년 당시 노라와 엑토르의 상급자이자 프로젝트 책임자. 고압적이며 보수적인 성향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체계적으로 배제한다. 노라의 천재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에게 실험 발표나 외부 노출을 허락하지 않는 인물로, 당시 사회구조의 병폐를 상징한다. 극 후반부에 노라가 과거로 돌아와 그와 재회하면서, 그녀는 과거의 억압을 직면하고 마침내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그것을 넘어선다.
레베카 (Rebeca) - 클라우디아 로보 (Claudia Lobo)
노라의 여동생. 과거에는 과학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으며, 전통적인 여성의 삶을 따랐다. 노라가 사라진 뒤 현실 세계에서 그녀의 빈자리를 감당해야 했고,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상실감을 품고 살아왔다. 영화 후반부에서 노라가 일시적으로 과거로 귀환했을 때 재회하며, ‘남은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인물로서 기능한다. 노라가 선택을 내리는 데 있어 감정적으로 복잡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다.
총평
《아워 타임스》는 단순한 시간여행물이 아닌, 한 시대의 기억과 여성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깊이 있는 사유의 영화다. 제목 그대로 ‘우리의 시간들’은 이 영화가 단일한 개인의 체험을 넘어서, 세대와 역사, 억압과 회복의 공동체적 시간으로 확장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1966년 멕시코시티에서 2025년의 멕시코로 시간 이동을 감행한 과학자 노라 세르반테스의 여정은, 기술적 상상력보다는 정체성과 기억, 그리고 선택의 윤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는 일반적인 SF 영화가 보여주는 파괴적 긴장감보다는 훨씬 묵직하고 조용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 작품은 관객에게 빠른 서사를 제공하지 않지만, 느리고 깊은 감정적 침투를 통해 인물과 세계의 변화에 동반하도록 초대한다.
차바 카르타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여성 서사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그는 여성을 과거에 갇힌 피해자로 그리기보다는, 현재로의 귀환을 통해 과거를 직면하고 스스로를 재정의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노라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 속에 휘말리는 인물이 아니라, 스스로 미래를 선택하고 역사의 흐름을 의식하는 주체로 성장한다. 이는 《아워 타임스》가 과거에 대한 향수나 복원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시선에서 과거를 반추하고 재구성하려는 태도를 견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영화는 시간의 이동을 통해 단절을 극복하고 연속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연출 면에서도 카르타스 감독은 섬세한 리듬과 미니멀리즘적 미장센으로 ‘시간의 감각’을 화면에 부여한다. 장면 전환은 느리고 절제되어 있으며, 인물의 시선이나 조명, 창밖 풍경의 변화 같은 세세한 디테일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정서를 포착한다. 특히 과거의 억압적 색조와 현재의 따뜻한 색감 사이의 대비는, 영화가 말하려는 가치 전환을 시각적으로 명확히 보여주는 요소다. 사운드 디자인 역시 침묵과 잔향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관객의 내면에 깊은 몰입을 유도한다.
이 영화의 감정적 중심은 배우 루세로의 섬세한 연기에 있다. 그녀는 노라라는 복합적인 인물을 통찰력 있게 구현해 냈으며, 절제된 대사와 표정, 그리고 긴 침묵 속에서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녀가 현재의 세계에서 과거를 마주하는 방식은, 단지 감정의 회복이 아니라 역사적 책임의 감각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연기는 이 영화가 단지 스토리텔링이 아닌 ‘감정의 아카이브’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아워 타임스》는 멕시코 현대사 속에서 묻혀버린 여성들의 존재와 이야기를 회복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과거의 희생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현재에서 우리의 시간을 다시 쓸 것인가?" 이 질문은 단지 영화 속 인물에게 던져진 것이 아니다. 관객 각자에게 돌아오는 질문이며, 공동체로서 우리가 맺는 기억과 시간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워 타임스》는 과거와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보내는 응답이며, 그 자체로 잊혀졌던 이름들의 부활이다.